심화된 양극화·어려워진 계층이동으로 ‘한탕주의’ 심리도 퍼져
평일 오전 10시인데도 서울 노원구의 로또 명당에는 로또를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박지영 기자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박모(60) 씨는 매주 자동 로또 5장씩 2만5000원어치를 구입한다. 한달에 20만~30만원 씩 구입한 지 10년이 됐다. 당첨 확률을 높이려 1등 당첨 횟수가 많은 ‘로또 명당’을 찾으러 다니기도 한다. 박씨는 “로또 1등 당첨되면 가장 먼저 빚을 갚을 것”이라며 “명당을 찾으러 다니는 재미도 있고 혹시나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로또를 사게 된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물가는 상승하면서 삶이 팍팍해진 이들이 로또를 찾고 있다. 올해 상반기 로또 판매액은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하던 2020년에 비해 약 40%나 증가하는 등 운에 기대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로또를 찾는 발길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매주 로또를 사는 등 구매 빈도도 높아졌다. 소소한 취미로 로또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
16일 헤럴드경제가 방문한 서울 노원구의 한 로또 명당으로 소문난 가게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오전 10시라는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로또를 사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20대부터 70대까지 로또를 구매하려는 시민들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이 가게는 주말만 되면 500m 떨어진 인근 지하철역까지 긴 줄이 늘어서기도 한다.
이 가게 점원 박민순(55) 씨는 “15년 정도 가게를 했는데 작년 연말께부터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걸 체감한다”며 “예전에는 명절을 낀 주라던지, 목·금·토요일 같이 주말에 가까워질 때만 줄을 섰는데 요새는 수요일 오후에도 줄이 길게 늘어선다”고 귀띔했다.
기자도 약간의 운을 기대하며 자동 로또 2장을 구매했다. 박지영 기자. |
로또 명당을 찾아 노원구까지 왔다는 40대 채모 씨는 지난해부터 매주 로또를 구매하고 있다. 자동로또만 5장을 구매한 채씨는 “52번이나 로또 1등이 나온 성지를 방문하면 나도 좋은 기운을 받아갈 수 있을까 싶어서 방문했다”며 “되면 너무 좋고 안 되어도 행운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으니 소소하게 구매하게 된다”고 말했다.
‘스피또 챌린지’를 매일 찍어 올리는 한 유튜버. 스피또를 구매해 긁어보는 영상을 올린다. [유튜브 캡처] |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매주 스피또를 구매해 긁는 모습을 올리는 ‘스피또 챌린지’도 인기다. ‘퇴사 기원’, ‘인생 역전’ 등의 제목을 내걸어 매주 복권을 긁는 영상을 촬영해 올리는 것이다. 1등 당첨시 구독자 이벤트를 거는 유튜버들도 있다.
실제로 4년 전에 비해 복권 판매액은 40% 가까이 증가했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집과 동행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복권 판매액은 총 3조6168억원으로, 2020년 상반기(2조6205억원)에 비해 38% 증가했다. 정부는 내년 복권판매액은 올해 계획보다 3960억원 늘어난 7조6879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불황이 일확천금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짚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권은 경제 상황에 대한 기대보다 불안감이 커질 때 구매가 늘어나는 대표적인 불황상품”이라며 “확률은 낮지만 한 번 당첨되면 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한탕주의에 기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짚었다.
양극화가 심화되며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사회적 분위기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산의 양극화, 소득의 양극화, 소비의 양극화 등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능력보다 운에 기대고 싶은 심리가 커진 것 같다”며 “한 방의 운을 기대하며 소소한 희망을 품는 걸 즐기는 심리도 있다”고 짚었다.
한편, 정부는 로또복권 1등 당첨금 규모를 확대할 필요가 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기재부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생각함에서 ‘로또복권 1등 당첨금 규모 변경’과 관련한 국민 의견을 이달 25일까지 수렴 중이다. 지난주 1141회차 로또 1등 당첨금은 약 24억5700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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