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관리시스템 구축해 정보 투명성 갖춰야
지역 거점 제공기관 지정으로 ‘카데바 쏠림’ 방지 필요도
시신 기증은 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사회 공헌입니다. 이런 선의가 누군가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고민도 있었습니다. 카데바 기획 기사가 시신 기증을 꺼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카데바는 더 투명하게 관리·감독 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내 시신이 어떻게 활용되는지가 투명하게 관리된다면 더 많은 시신 기증 사례가 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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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박지영·이용경 기자] #. 지난 2023년 6월. 미국 하버드대학의 의과대학 영안실 관리자 세드릭 로지(56)는 의대 영안실에서 해부를 마친 시신의 머리, 뇌, 피부, 뼈 등 신체 부위를 몰래 빼돌렸다. 로지는 수년 동안 해부 실습 등 교육 목적으로 하버드 의대에 기증된 시신을 돈을 받고 팔아, 최소 39차례에 걸쳐 3만7000달러(약 4840만원) 이상을 벌었다.
하버드대는 이 사건이 벌어진 이후 외부 전문가들로 이뤄진 패널을 구성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했다. 같은 해 11월 발표된 ‘하버드 의과대학의 해부 시신 기증 프로그램에 대한 보고서(Summary Report on the Harvard Medical School Anatomical Gift Program)’는 ‘투명성’을 강조했다. 시신을 기증 받는 우리나라 의과대학·종합병원에 필요한 것 중 하나도 ‘투명성’이다.
우리나라 의과대학·종합병원에 기증되는 시신들의 관리 및 활용 내역은 의과대학·종합병원에서 관리가 이뤄진다. 기증자 모집부터 활용처에 대한 적절성 및 배분, 이후 시신 화장 과정까지 민간이 도맡는 것이다.
이런 상황 탓에 보건복지부나 교육부 등 정부 부처는 의과대학·종합병원의 시신 보유 구수 및 활용처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지 못한 상태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는 전체 63개 의과대학(치대·한의대 포함)을 대상으로 해부교육 현황을 조사했다.
교육부가 확보한 ‘2022~2024년 대학별 교육용 시신 확보현황’ 또한 전체 의과대학 중 38개 대학만 자료를 냈다. 연세대와 연세대 원주캠퍼스는 자료를 내지 않았다. 대학이 원하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관리 부실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현행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제9조의2)은 “시체의 일부를 이용해 연구하려는 자는 그 연구를 하기 전 연구계획서를 작성해 기관생명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이는 뇌 또는 심장 등 ‘시체의 일부’에 한한 조항이지, 시신 한 구를 사용할 때 적용되지는 않는다. 동법 시행령에 시체해부심의위원회에 설치에 대한 항목이 있지만, 이 또한 ‘시체해부심의위원회를 둘 수 있다’는 권고 수준이다.
가톨릭대학교의 카데바를 활용한 해부연수회 신청 절차. [가톨릭대학교 홈페이지 캡처] |
이러한 사각지대 탓에 대학들은 각자 운영위원회 등을 개최해 카데바의 사용처를 정한다. 하지만 이는 각 대학의 해부학교실에 소속된 교수 등 내부인원으로 구성돼, 제대로 된 관리감독을 받지 못하는 상태다. 위원회의 회의 결과 또한 기증자나 정부가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다.
기증 시신의 사용처가 ‘깜깜이’니 기증자의 유족 또한 어떤 교육에 시신이 활용됐는지 알 수 없다. 실제로 헤럴드경제가 만난 5명의 시신 기증 유족 중 1명을 제외하고서는 가족의 시신이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해서 전달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유족들을 중심으로 사용처를 알려달라는 요구는 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시신 기증 경험이 있는 유족 28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유족들은 시신 기증 후 정보 제공을 가장 원했다. 경희대학교에 아버지의 시신을 기증한 고강섭 중랑구 의원은 “시신 기증 후 연구가 시작된다, 연구가 종료됐다고 연락이 오니 시신이 제대로 된 교육과 연구에 쓰였구나라며 안심 할 수 있었다”며 “언제, 그리고 어떻게 쓰였는지까지 알려주는 것이 기증자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투명성’을 강조한 하버드대의 보고서는 하버드대의 시신 기증 프로그램(Harvard Anatomical Gift Program, AGP)에 기증 또는 취득한 시신의 관리 및 사용과 관련한 정책이 없기 때문에, AGP의 역할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학생 등이 사용하는 카데바의 기증·취득·추적·사용·관리 및 처분에 관한 최소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가령 기증 시신에 각각 태그(Tag)를 붙여, 기증자의 나이나 병력 등 기초적인 신원을 식별할 수 있게 하고, 시신의 활용처와 활용 시기와 교육이 끝난 이후 장례 절차 등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 시신 사용을 추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보고서는 “태그에 바코드를 삽입해 기증자의 시신을 추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며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고, 시신의 위치가 어딘지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신 기증에 대한 규정을 준수할 수 있도록 운영위원회를 두고, 관리위원회를 따로 설치해 장기적인 감독을 담당해야 한다는 제언도 담겼다. 운영위원회에는 의대 학장이나 해부학 전문 지식을 갖춘 교수를 포함하고, 관리위원회에는 기부자 커뮤니티 대표나 학생 대표, 생명 윤리학자 등을 포함해 감독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국립생명윤리정책원이 제안한 통합 관리시스템 세부 기능. [이은영 등, ‘시체 기증에 대한 예우 및 지원 제도 개선 방안’, 2024 중 캡처] |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지난 4월 발간한 ‘시체 기증에 대한 예우 및 지원 제도 개선방안 연구’에서 기관별 기증 및 기증희망자 등록 현황과 목적별 이용현황 등을 관리할 수 있는 ‘통합 관리시스템’ 구축을 제안한 바 있다.
김인범 가톨릭대 응용해부연구소장이 보건복지부 용역으로 2023년 2월 발간한 ‘시체 기증 활성화를 위한 연구’에서도 한국단백체학회(KHUPO) 회원 및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NBK)과 한국인체자원은행네트워크(KNB) 관련 연구자들 3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증시신 및 시체 유래물을 활용한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연구목적 시체제공기관·연구자 간 네트워킹이 가능한 연구목적 시체 제공 통합관리 플랫폼이 개발되면 이를 이용하겠다는 대답이 100%였다.
김 교수는 보고서에서 “시체를 추적, 기록, 보관하는 시스템은 매우 중요하며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시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전달되었는지 추적 가능하므로, 예기치 못한 문제 발생 시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국립생명윤리정책원은 논문에서 “현행 시체해부법 제9조의8 제2호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은 연구 목적으로 허가를 받은 기관 간 협력을 위한 정보시스템 구축·관리 및 활용 촉진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현재 질병관리청에서는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미운영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움직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종교계열 대학 또는 대형병원을 가지고 있는 의과대학에 쏠린 시신 기증을 해결할 방법 중 하나로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거점 시체 제공기관을 선정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가령 미국 일리노이주의 AGA(Anatomical Gift Association)는 시카고 주변 8개 의과대학의 모임으로, 시카고 및 일리노이 내에 있는 다른 의과대학에서의 의학교육, 연구와 더불어 그 외 지역 보건이나 군인, 소방서와 같은 의학교육이 필요한 곳에 기증시신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한국에서도 국립대병원 등이 지역 사립대병원보다 많은 기증을 받는 사례가 다수 있는 만큼, 지역 거점 시체 제공기관을 선정해 기증자가 적은 대학으로 시신을 제공하거나, 기증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 지역의 한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관계자는 “지역의 경우 의과대학끼리 알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 학교 시설의 부족으로 수용할 수 없을 만큼의 시신 기증 요청이 오면 근처에 시신이 부족한 대학으로 기증을 권유하기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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