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전국 25개 병원 현황 모니터링
군의관 등 대체인력 투입…“효과 미지수”
협진 체계 무너지며 ‘119 뺑뺑이’ 지속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이 파행하는 가운데 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로 내원객이 들어가고 있다. 이날 정부는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병원들을 중심으로 군의관 15명을 배치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박준규·박지영 기자] 의료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의료현장에서 가장 ‘취약고리’로 여겨지는 병원 응급실이 반쪽짜리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급한대로 군의관과 공중보건의(공보의)를 현장에 순차적으로 파견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들이 응급의료의 ‘즉시 전력’이 되긴 힘들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일선 의료인들은 응급의료 차질이 전국적으로 도미노처럼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미 24시간 내내 정상 운영이 어려운 병원들이 나타났다. 5일 기준 응급실 운영을 축소한 전국의 병원은 전국적으로 5곳이 넘었다. 이날부터 아주대병원과 순천향천안병원이 응급실 운영 시간을 단축 조정한다. 아주대병원은 이날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부터 24시간은 16세 이상 최중증환자(심정지)만 응급의료센터에 수용한다. 순천향천안병원은 소아응급의료센터는 주 3일 운영으로 변경한다.
전날 보건복지부는 브리핑에서 서울 이대목동병원(권역), 세종충남대병원, 건국대충주병원, 강원대병원 등이 의료진 부족에 따라 응급의료센터를 축소 운영하고 있다고 알렸다.
복지부는 전국의 대형병원 25곳의 응급실 운영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응급실을 책임질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최소 근무 인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병원들이다. 서울 소재 대형병원 7곳(강동경희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고려대 안암병원, 이대목동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상계백병원, 강남성심병원) 등도 포함됐다.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며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진료중단이 현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앞에 구급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자체 파악 결과에 따르면 순천향대 천안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이대목동병원, 여의도성모병원도 응급실 운영 중단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 |
정부는 전날인 4일부터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군의관 15명을 파견했다. ▷아주대병원 3명 ▷이대목동병원 3명 ▷충북대병원 2명 ▷세종충남대병원 2명 ▷강원대병원 5명 등이다. 오는 9일까지 군의관과 공보의 235명도 일선 의료현장에 추가로 투입 예정이다.
병원 응급실의 ‘나홀로 당직’을 보완하기 위한 긴급 투입이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복지부에 따르면 4일 투입한 군의관 15명 중 8명이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응급의학과 인력은 기본적으로 후송된 환자의 상태를 살펴서 응급처치를 해야 하기에, 각 진료과에 대한 이해도가 필수다. 복지부는 “인력이 워낙 부족한 상황에서 군의관을 파견해 (최소) 2명 정도 근무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설령 응급실에서 1차 처치를 한다고 해도, 환자의 질환에 맞춰 각 진료과 전공의가 치료를 이어가는 협진도 어려운 상태다. 고범석 전국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회 공보이사(아산병원 교수)는 “(투입된 인력 중) 응급의학과는 소수일 것”이라며 “만약 피부과 전공의가 응급실에 근무한다거나 임상 경험이 없는데 응급실로 파견 왔다라고 한다면 답이 없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른바 서울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를 비롯한 다른 대형병원들은 현재로선 운영시간 단축 등의 차질은 없이 운영 중이다. 하지만 환자가 찾아가도 진료를 못 보는 질환이 늘어나고 있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면서 응급처치에 이어지는 배후진료를 제공하기 어려워서다. 닷새간 이어지는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응급실 운영에 차질을 빚는 병원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5일 오전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을 보면 응급센터를 운영하는 주요 병원 대부분은 ‘진료 제한’ 공지를 띄워둔 상태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이 온라인 종합상황판에 올린 공지문. 응급실에서 치료나 수용이 어려운 질환들이 나와 있다. |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성모병원은 ‘야간 안과 진료 불가’, ‘비뇨의학과 환자 오후 11시~오전 6시 수용 불가’,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환자 야간 수용 불가’ 등의 메시지를 올렸다. 송파구 아산병원은 ‘ENT(이비인후과) 질환 진료불가’, ‘정형외과 타원 전원 수용 불가’ 등을 공지하고 있다.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은 ‘소아신경외과 환자 수용 불가’, ‘성형외과 단순 봉합 불가’, ‘응급투석 평일 오전 8시~오후 6시만 가능’ 등을 공지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도 안과와 이비인후과 관련 질환은 평일 오후 6시 이후 응급진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태다.
상황이 이렇자 응급환자들의 ‘응급실 뺑뺑이’는 매일밤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병원들은 구급대원들에게 ‘주변지역 주민 민원 등으로 타지역에서의 전원은 어렵다. 119환자는 사전에 반드시 문의해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경남권에서 근무하는 한 구급대원은 “안과나 소아청소년 같이 특수한 과들은 구급 출동 나갈 때 지령 들으면서 ‘이거 장거리겠다’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한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 병원에선 잘 안 받는 질환이기 때문”이라며 “지역에 대학병원이 아무리 많아도 (환자를) 받아주질 않으면 다른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응급의료 등 비상 진료 대응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 |
일선 의료현장이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의사나 간호사들의 이탈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특히 병원 응급실에 배치할 의사 구인난은 지속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올해 들어 응급의학과 전문의 채용 공고를 수차례 냈으나 좀처럼 채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연봉 4억’을 명시하며 구인 중이다.
지역 의료기관들도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떠나간 빈자리를 좀처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세종충남대병원, 건국대충주병원, 아주대병원 등 복지부가 집중 모니터링 대상으로 삼은 의료기관 모두 응급의학 전문의의 사직과 이직을 겪은 뒤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범석 공보이사는 “바쁜 진료과 선생님들은 한 번 당직하면 정말 뜬 눈으로 밤을 새는데 다음날에 쉬지 못하고 또 환자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이 6개월째 되어 가니까 모두 몸과 정신이 지쳐 있다. 이젠 그만 두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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