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한국 임애지와 북한 방철미가 시상대에 올라 삼성전자 갤럭시 Z플립6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2024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급에서 나란히 동메달을 따낸 임애지와 방철미(북한)가 함께 시상대에 오른 장면은 또 하나의 감동이었다. 냉랭한 남북관계처럼 두 선수는 시상식 내내 거의 말을 주고받지 않았고 방철미도 시종 굳은 표정이었지만, 기자회견에 와서는 겨우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임애지의 재치 덕분이다.
임애지와 방철미는 9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 경기장에서 열린 복싱 여자 54㎏급 결승전이 끝난 뒤 열린 메달 세리머니에서 함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상대로 향할 때 맨 앞에 선 임애지는 환하게 웃으며 관중에게 인사했으나 뒤따라오던 방철미는 줄곧 무표정이었다. 메달을 건네받을 때도 임애지는 미소를 보였으나 방철미의 표정은 변함없이 굳어 있었다.
메달 수여식이 끝나고 시상대에서 '빅토리 세리머니'를 할 때, 임애지가 금메달리스트의 단상에 올라가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먼저 올라가 있던 방철미가 임애지에게 손짓을 보내긴 했지만 이때도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임애지가 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여자 복싱 54kg급 시상식에서 북한 방철미와 이야기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시상식이 끝난 뒤 임애지는 공동취재구역에서 "(방철미 선수가) 말 못 하는 사정이 있구나 싶어서 나도 말을 걸지 않았다. 곤란하구나 싶었다"면서 "그런 분위기에서 내가 '언니'라고 부르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제가 더 다가가면 안 될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면서도, 기자회견 중에도 굳은 표정이던 방철미는 임애지의 한마디에 잠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본 기자가 '임애지가 준결승 끝나고 시상식에서 방철미 선수를 안아주고 싶다고 말했는데, 안 보이는 곳에서 실제로 안아줬는가?'라고 묻자 임애지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하다 얼마 후 "비밀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답변을 들은 방철미는 안심이 됐는지 그제서야 미소를 띄었다.
방철미는 다른 질문에는 역시나 딱딱한 표정과 말투로 짧게 답했다. 기자회견 내내 단상 구석에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북한 복싱 지도자를 의식하는 눈치였다.
방철미는 동메달 소감을 묻자 "이번 경기에서 1등을 하자고 생각하고 왔지만, 3등밖에 쟁취하지 못했다. 올림픽은 여느 경기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큰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는 바라는 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남북 선수가 나란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데 대해서도 임애지는 "지금은 (남북이) 나뉘어졌지만, 같이 힘을 내서 메달을 따서 좋았다. 다음에는 (방철미와) 결승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한 반면, 방철미는 "선수로 같은 순위에 선 것에 다른 것은 없다. 다른 감정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임애지가 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여자 복싱 54kg급 시상식을 기다리고 있다. 위쪽은 북한 방철미.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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