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기어코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전국 개원의 중심의 대한의사협회(의협)가 9일 전국 의사 대표자 회의를 열고 오는 18일 하루 전면 휴진(총파업)을 결정했다. 앞서 서울 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이 17일부터 필수 의료를 제외하고 파업하겠다고 밝히자, 개원의들은 그 다음 날로 전면 휴진일을 정한 것이다.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 등 다른 대학 의대 교수들도 의협 방침을 따른다는 입장이어서 18일에는 대학 병원과 개원가 모두 휴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계의 집단 휴진은 이번이 네번째다. 2000년 의약 분업과 2014년 비대면 의료 도입,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당시에도 집단행동을 벌였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한 의료계의 파업에 정부는 유화적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노환규 전 의협회장이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오만한 태도를 보인 배경이다. 그러는 사이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이 상징하는 필수의료 및 지방의료에 뚫린 구멍은 더 커져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할 수준에 이르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을 한참 밑도는 의사 수를 늘리자는 데 90%에 가까운 국민이 동의(보건의료노조 조사)하고 있고 윤석열 정부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는 야당까지 의대 정원 확대를 지지하고 있다. 법원도 ‘2000명’ 숫자에는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지만 의사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정부의 판단은 맞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의료 정상화를 이루자”며 총파업을 강행하겠다고 하는 것은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것이고 법 위에 존재하겠다는 삐뚤어진 특권의식을 드러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총파업에 나서려면 절박한 명분이 필요한데 이번 총파업은 그마저 찾을 수 없다. 의협은 내년 의대 정원 증원 중단을 요구하지만 2025년도 의대 증원은 지난주 대학 모집요강 발표와 함께 절차가 마무리돼 없던 일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해 정부가 내린 업무개시 명령 등을 ‘철회’가 아니라 ‘취소’하라는 서울의대 교수들 요구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한발 양보해 미복귀자에 대해 사직후 개업·취직·입대 등의 길을 열어준 것인데 여기서 더 나가 행정 처분을 아예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은 지나치다.
한덕수 총리는 의협이 총파업을 선언한 날 국립대 의대 교수 증원 및 필수의료 10조원 투자를 포함한 의료계 지원을 약속했다. 과로와 박봉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에게 재대로 된 처우를 해주고 필수·지방의료를 제 궤도에 올리는 것이 진정한 의료 정상화다. 의료계는 이를 위해 대동단결하는 것이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