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3150만개 팔린 ‘국민 달팽이 크림’
올 하반기 아마존 통해 미국 진출 본격화
‘환자’ 위한 화장품을 K-뷰티 선봉장으로
직원출산율 1.34의 비결은 직원보호제도
이주호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가 2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고운세상코스메틱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김희량·박병국 기자] “김 상병. 휴가 나올 때 ‘그거’ 좀 사 올 수 있어?”
군대에 아들을 보낸 엄마, 연인을 보낸 여자친구, 복무 중인 군인까지 사로잡았다.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3150만개가 팔린 ‘닥터지 블랙 스네일 크림(일명 달팽이 크림)’ 얘기다. 한국인 3명 중 2명이 써봤다는 국민 크림은 하반기 아마존 출점을 시작으로 160조 규모의 미국 뷰티 시장에 상륙한다.
이 화장품을 만든 회사는 고운세상코스메틱이다. 지난 9년간 연매출은 약 17배 성장, 올해 2000억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직원들의 합계 출산율(1.34)이 한국 평균의 2배가 넘는 회사로 유명하다. 헤럴드경제는 29일 경기도 성남에서 이주호 대표를 만나, 피부과 환자를 위해 만든 1세대 더마코스메틱 제품의 성공 신화를 들었다. 그는 2022년 1월부터 고운세상코스메틱을 이끌고 있다.
이 대표는 K-뷰티가 2012년~2017년 한류 돌풍 당시와 다른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한류가 중국 등 일부 국가에 국한됐다면 이제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출신(한국)을 넘어 환자를 위해 시작한 초심과 진정성을 해외에 전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올해 해외 뷰티앤퍼스너케어 시장 규모는 766조원 규모로 전망된다. 이 중 하반기 진출하는 미국 시장은 약159조원(1219억 달러) 규모로 약 5분의1을 차지한다.
이주호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가 2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고운세상코스메틱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대표 브랜드 닥터지(Dr.G)의 출생지는 병원이다. 피부과 전문의인 창업자(현 명예회장) 안건영 박사는 어릴 적 전신 화상으로 3번의 큰 수술을 경험했다. 그는 1998년 국내 최초 미용 전문 피부과인 고운세상피부과를 연다. 그가 만든 2003년 민감성 피부의 환자들이 쓰는 병원 판매용 화장품이 출발점이 됐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도 닥터지를 의약품 수준의 성분이나 기술을 접목한 화장품인 ‘더마코스메틱’ 시대를 연 주역으로 평가한다.
환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닥터지는 2011년 올리브영에, 2016년 군매점 PX(Post eXchange)에 입점한다. 그리고 ‘퀀텀 점프’를 한다. 100억원대 매출이 1000억원대로 오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 대표의 한 수도 있었다. 이 대표는 “당시 PX 화장품 이미지가 저품질·저가라는 인식이 있어 입점을 반대하는 내부 의견도 있었다”면서 “군인 장병과 군인 가족의 입소문을 믿어 보자고 설득했지만, 일종의 도전이었다”고 돌아봤다. PX에서 판매된 닥터지 달팽이 크림은 피부과에서 시작된 브랜드라는 점, 성능, 가격 면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다.
국방부 유튜브 채널에서 PX 화장품과 피부 관리법을 알려주고 있다. [국방부 유튜브] |
이후 고운세상코스메틱은 비비드로우·힐어스·랩잇 등 브랜드를 추가하며 중국, 홍콩, 일본을 비롯해 세계 13개국으로 판로를 넓혔다. 올해 목표 매출은 2500억원이다. 오는 2030년까지 10개 브랜드를 100개국에 팔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웠다.
성공 속에서도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2022년 신규 브랜드 비비드로우(VIVIDRAW)에 이어 올해 메이크업 브랜드 힐어스(Heal us)로 첫 색조 화장품 라인을 선보였다. ‘내면을 돌보자’는 메시지를 답은 첫 대중 팝업스토어 또한 내달 7일까지 서울 성수동에서 진행한다.
인터뷰 내내 이 대표는 지금의 성장을 이룬 주역이 직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의 인사팀 명칭은 성장지원실이다. 타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셀프 승진 심사제’와 자체 인재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이 이색적이다. 직원 역량 강화를 위해 분기별 1권의 독후감 쓰기와 사내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 교육비도 무제한 지원한다.
이주호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가 2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고운세상코스메틱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이 대표는 회사의 복지제도를 ‘직원보호프로그램’으로 이름 지었다. IMF(금융위기) 때 첫 직장에서 40명에 가까운 회사 동료들이 구조조정 되는 현실을 경험한 뒤 회사가 직원의 성장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회사를 성장의 수단으로 활용하라고 얘기한다”면서 “대신 회사가 직원을 보호해야 잡념이나 걱정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이 대표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난 10년간 복지제도는 진화를 거듭했다. 올해는 팀원이 육아휴직을 가면 동료들에게 주는 서포터즈 지원금이 생겨 11명이 혜택을 받았다. 주 2회까지 재택근무가 가능한 책임근무제와 하루 7.5시간 근무제도 기본이다. 최근에는 배우자가 임신 36주 이상일 경우 출산까지 남성 직원의 월 2시간 단축근무를 지원하는 제도를 추가했다. 그는 “가족이 아프면 무제한 재택근무를 허용한다”면서 “직원이 암 등 중증질환에 걸릴 경우 최장 1년의 유급휴가와 최대 1억원까지 의료비까지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취업 준비생들도 고운세상코스메틱을 주목하고 있다. 작년 입사 경쟁률은 300대 1에 달했다. 외부에서 보는 회사의 평가에는 복지 제도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 대표는 회사가 앞장서 직원을 보호하고 혜택을 제시하니, 직원들도 회사의 어려움을 모른 척 지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네고왕(할인 행사) 때 100만건의 주문이 접수돼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일부 직원이 게시판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며 “그 결과, 직원 100명이 지원을 자처해 3개월 걸릴 일이 10일 만에 단축되는 것을 보고 저 또한 놀랐다”고 덧붙였다.
hop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