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얽힌 ‘라인야후 사태’가 일단 진정되는 분위기다. 지난 10일 우리 정부가 유감을 표시하자 일본 정부도 지분 매각 압력은 없었다며 발을 뺐다. 라인야후의 지주회사인 A홀딩스의 네이버 지분 매각 이야기도 잠잠해졌다. 우리 정부는 일단 엄중하게 대응했다. 정치권 일각의 ‘죽창가식 반일몰이’는 오히려 일본의 덫에 말려드는 것이다.
‘라인야후 사태’는 일본의 전형적인 사회·문화적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 일본인은 힘의 상황이나 조건이 변할 때 재빨리 표변하는 경향이 있다. 힘이 곧 정의의 기준이다. 요즘 자유무역원칙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총무성의 행정지도는 미국이 안보문제로 틱톡을 강제매각하는 법을 제정한 것을 모방했을 것이다.
일본사회에는 여전히 계급과 서열을 존중하는 심리가 있다. 조금이라도 힘이 강한 자에게 권력이 집중되기 쉽다. 그래서 50대 50 동일 지분의 동업도 어렵다. 정권교체 없이 자민당이 장기집권하는 것은 유권자들이 좀 더 강한 쪽에 표를 몰아주기 때문이다.
‘모르는 척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도 있다. 위에서 일을 추진하고 “아니면 말고”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행정지도는 한 번 찔러 봐서 통하면 좋고, 일이 꼬이면 아무 일도 아닌 듯 모르는 척 할 수 있는 수단이다. 한국의 강한 반발에 정부 관리들은 물론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별일 아니다’며 진화한다. 한국을 얕잡아보는 비틀어진 자존심도 있다. 일본 정부기관의 78%, 지방자치단체의 65%가 라인야후를 이용하면서 반감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에 대한 지배권과 기술을 탈취하려는 것인지, 일본 정부가 개입하고 있는지 그 내막은 불분명하다. 정부와 짜고 치는 것일 수도 있다. 2021년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와 50대 50의 지분으로 A홀딩스를 설립하며 경영권은 넘겨줬다는 것도 이례적이다. 손 마사요시 회장의 ‘일본식 기업사냥’에 네이버가 처음부터 당했을 수도 있다. 지금은 네이버가 일본의 금리와 엔 환율 전망까지 감안하며 지분 매각 여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네이버는 당장은 지분을 매각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속내는 팔고 싶기 때문에 ‘정부가 너무 나서지 말라고 사정했다’는 얘기마저 흘러나온다. 정부와 네이버가 손발을 맞추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문제가 외교분쟁으로 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26일 개최된 한일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라인야후 문제를 원칙적인 선에서 언급한 것은 그런 의도였을 것이다. 지금은 모든 국가가 데이터주권과 데이터안보를 경제안보로 중시한다.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경제질서는 자유무역규범 가치를 준수하며 안전한 공급망을 공유하는 국가들끼리만의 경제동맹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생산력은 한국이 조금 앞서가지만, 인공지능(AI)은 학습에 필요한 대규모언어모델(LLM) 데이터 규모가 작아 불리한 면도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한 취약점을 상호 보완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데이터안보 문제로 다투기보다는 데이터협력협정(가칭)을 추진하는 것은 어떤가? 어차피 서로 새로운 경제질서에 관한 논의를 할 때도 됐다. 물론 국민들에게는 미리 충분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이현주 전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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