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뺑소니’를 저질러 놓고 거짓말과 조직적 은폐로 일관한 트로트 가수 김호중 사건을 보는 마음이 씁쓸하다. 김씨는 진실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할 시간이 열흘이나 있었지만 거짓말, 버티기, 팬심 이용 등 갖은 회피 전략을 동원하다가 사회적 분노를 키웠다. 김 씨의 이런 모습에서 유명 정치인들의 행태가 겹쳐 보인다는 이들이 많다.
김 씨가 음주 운전 사고 후 보여준 은폐 행태는 그야말로 종합 선물 세트격이다. 사고를 낸 후 곧 바로 도주했고 매니저가 김 씨 옷을 입고 허위 자수했다. 소속사는 김 씨 차량의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제거했다. 김 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음주 가능성을 제시했는데도 “술잔에 입은 댔지만 마시진 않았다”고 버텼다. 후행음주 의혹도 받고 있다. 음주 사고 후 의도적인 추가 음주로 음주량 입증을 어렵게 만들려는 꼼수다. 그러고는 예정된 공연을 두 차례나 치렀다. 팬들 앞에서는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며 피해자인 척 했다. 김씨는 23~25일 예정된 공연도 강행하겠다고 한다. 김씨와 관련자들은 출국 금지된 상태다.
더 가관인 것은 고위 전관 변호사를 선임한 김 씨가 20일 변호인을 통해 “너무 괴롭다”는 심경을 밝히며 경찰에 자진 출석 의사를 밝힌 점이다. 경찰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셀프 출두’하겠다고 한 것이다. 팬심을 이용해 떳떳하다는 인상과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것이다. 김 씨의 팬들은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감싸고 있다. 열광적 지지자들에 기대 자신의 잘못과 죄를 덮으려 하고 감싸는 일이 정치권의 전유물은 아닌 모양이 됐다.
익히 보아온 ‘팬덤 정치’의 폐해가 어느새 우리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것은 어닌지 우려스럽다. 앞뒤를 따지자면 팬덤 정치는 연예계 팬덤을 벤치마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팬들은 자신의 우상을 키운다는 자부심이 크지만 열정이 지나쳐 이성적 판단보다 자신이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는 편향 왜곡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쉽다. 건전한 상식과 거리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깊이 반성해야 하지만 최근 국회의장 선출 과정의 민주당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극성 지지층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찍은 의원을 색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정청래 의원은 이들을 대변해 “당원들은 윤석열 정권과 맞짱 뜨는 통쾌감을 추미애를 통해 보고 싶었다”며 “당원들이 시어머니 노릇 하려느냐는 불만이 있는 의원이 있다면 시대 변화에 둔감한 문화지체”라고 했다. 강성 당원 말을 따르는 게 시대 정신이라는 얘기인데, 민심과 상식에 어긋난다. 김 씨 사태가 우리 사회에 주는 교훈을 무겁게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