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전세사기피해자를 신속히 구제하기 위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제정된 후, 시행된 지 10개월이 지났다. 청년, 신혼부부 등 재정기반이 약한 사회초년생의 피해가 집중되다 보니 보기 드물게 여야 합의로 신속하게 법률이 제정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약 1만6000여명이 피해자로 결정됐고, 무이자 대출, 긴급 주거, 경공매 대행 등 다각적인 지원이 제공됐다. 이는 신속한 국회의 협의, 법률의 조속한 실행을 가능케 한 국토부, 그리고 현장에서 피해 신청을 받고 지원 절차 등을 안내하는 지자체의 적극적 협력이 이뤄낸 그나마 다행스러운 결과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별법의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특별법이 긴급하게 제정·시행되다 보니 사각지대 등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특별법을 개정할 필요성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개정안은 이 법의 효과적 집행에 가장 중요한 성공 요소였던 여야 정치권과 국토부, 지자체 간의 적극적인 협력체계를 손상시키고, 오히려 실질적 효과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먼저, 개정안에 포함된 임차보증금반환채권 매입 방안은 피해자 신청 시 공공이 임차인의 보증금 채권을 공정한 가치평가를 거쳐 매입하고, 이후 경·공매 시 배당이나 주택 매각을 통해 비용을 회수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해당 채권은 복잡한 임대차계약 관계에서 발생한 채권으로 이를 ‘공정하게 가치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게다가 채권 가격의 평가는 채무자(임대인)의 상환 능력이나 신용을 떠나 생각할 수 없는데 전세사기 사건에서 이를 얼마나 인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방안은 복잡한 과정을 거침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무상으로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고 회수하기 힘든 채권만을 떠안아 채무자와의 복잡한 법률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채권 매입의 재원이 주택도시기금이라는 것이다. 주택도시기금은 ‘국민 주거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국민들의 주택청약저축 등으로 조성된 자금이다. 즉, 국민들에게 잠시 빌려온 부채성 자금으로, 기간이 되면 갚아야 한다. 현재도 여유자금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회수 가능성이 낮은 부실한 채권을 매입하는데 사용하게 되면 신생아특례대출, 공공주택 공급 등 기금 설립 목적에 따른 본연의 주거복지 사업에 심각한 차질이 우려된다.
선순위저당채권 매입 방식도 논란이 많다. 이는 임차보증금반환채권보다 순위가 앞선 선순위저당채권이 있을 때 피해자가 신청하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선순위저당채권을 보유한 자에게 채권 매도를 요청하고, 상대방은 ‘정당한 거절 사유가 없으면’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피해자들을 위해 선순위저당채권의 권리행사를 유예하거나 전부 또는 일부 포기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사실상 국가가 선순위저당채권자의 재산권을 ‘강제수용’하는 것으로 이와 관련된 헌법적, 법률적 논란과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선순위저당채권의 평가 및 관리방법과 캠코의 권리행사 유예 또는 포기 시 업무상 배임죄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의문이다.
전세사기 피해 보호를 위해 국회와 정부는 피해자들이 집을 잃고 쫒겨 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를 토대로 적극적으로 협력해왔다, 향후 특별법의 개정도 이러한 상호협력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만 실질적으로 피해자를 위한 행정이 가능할 것은 자명하다. 특별법의 유효기간은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불필요하게 복잡한 절차와 법률적 논란으로 분쟁하기보다는 효과적이며 신속하게 피해자를 구제하는 방향으로 특별법을 개정하기를 희망한다.
변웅재 변호사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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