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경관 해치나 개입 어려워
관련법 개정안도 국회 계류 중
[영상=이건욱 PD]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전국 곳곳에 포진한 공사중단 건축물은 300곳에 달하지만, 이 중 허가 취소 및 철거 등 조치를 취한 건축물은 10%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포영화 곤지암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이런 방치 건축물은 주민 안전을 위협하고 도시 경관을 해치지만 권리관계가 복잡해 행정 개입에 한계가 있고, 이행조치 명령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발의된 관련 법안 개정안은 국회 계류 중인 상황이다.
[영화 곤지암 포스터] |
27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에 공사중단 건축물은 총 286곳에 달한다. 지역별로 보면 강원도가 41곳으로 가장 많고, 뒤이어 경기 34곳, 충남 33곳, 충북 27곳, 경북 23곳, 제주 22곳, 경남 21곳 등 순이다. 전국 공사중단 건축물의 세부 정비현황을 보면, 286곳 중 정상화 건축물은 29건에 그친다. 허가 취소가 6건, 철거는 6건, 공사 재개가 17건이다.
경기도 양평군 한 폐건물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이건욱 PD] |
이런 건축물들의 공사가 중단된 이유는 소송, 자금 부족, 부도 등 다양하다. 강원도 홍천으로 향하는 44번 국도 중간에 위치한 양평군 청운면 한 폐건물은 20여년째 방치된 상태다. 1995년 모텔로 짓기 위해 공사가 시작됐지만 2000년대 초 소송으로 공사가 중단됐고, 화재까지 발생해 까맣게 그을린 채 뼈대만 드러낸 모습으로 남아있다. 새 주인을 찾아도 안전을 위한 철거는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양평군 용문면에 위치한 한 콘도 건물은 1990년대에 개관했는데, 이미 사업자가 부도를 낸 이후 어려움을 겪다 1990년대 후반에 재개장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사업을 중단하고 방치되다가 2010년대 들어 리모델링 공사를 시행했지만 시공사 부도로 10여년간 방치됐다. 현재 건물 1층은 한 업체가 쓰고 있지만 건물을 그대로 둔 채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같은 건축물들은 주로 국도변이나 교외 등 인적이 드물고 한적한 곳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수십년간 관리되지 않아 건물 부식 속도가 빨라, 안전사고 위험이 높고 도시 미관을 저해하며 주변지역 슬럼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사유재산이라 강제 처분이 어렵다. 현행법은 공사중단 건축물 정비를 위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실태조사 시행 및 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한 후 시·도지사가 정비계획을 수립해 정비사업을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는 자력 재개하지 않는 공사중단 건축물에 공공명령이나 분쟁 조정, 자진철거 유도 등을 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한 폐건물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이건욱 PD] |
또한 붕괴·화재 등 안전사고나 범죄 발생의 우려가 높은 공사중단 건축물, 공익상 유해하거나 도시미관 또는 주거환경에 현저한 장애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공사중단 건축물에 대해선 정비계획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건축주에게 철거를 명할 수도 있습니다. 자치단체의 철거 명령 시 건축주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6개월 이내에 철거해야 한다.
그러나 사유 재산인지라 철거가 쉽지 않다. 건축주·시행사 등의 자금 부족이나 부도, 채권자·채무자 간 복잡한 권리관계, 소송 등 문제가 얽혀있으면 일단 적극 개입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간혹 공사 중단 건물의 주인만 수십명인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매각도 쉽지 않은데 법적 다툼 등이 불거질 수 있어 처치 곤란이란 전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방치 건축물은) 사기가 당한 경우도 있을 수도 있고 회사가 부도가 날 수도 있다”며 “중앙 정부든, 지자체든 시장 경제를 직접 개입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주도로 폐건물이 탈바꿈된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기 과천시 갈현동에는 1991년 착공 이후 6년 만에 시공사가 부도를 맞아 ‘우정병원’이란 이름의 건물이 20여년간 방치됐다. 이후 사업권이 넘어갔지만 채무관계 등으로 협상이 쉽지 않았는데, 정부의 ‘장기방치건축물 정비 선도사업’에 선정되며 건물을 허말고 대단지를 짓게 됐다. 당시 정비지원기구였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을 맡아, 올해 1월 입주한 ‘과천 수자인’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LH가 주도한 장기 방치 건축물 정비선도사업은 4곳에서만 진행됐고, 2022년 초부터는 한국부동산원이 정비지원기구를 맡았다. 수백여곳에 달하는 방치 건축물을 모두 철거 및 재개발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부동산원은 국토부와 함께 실태조사 및 정비기본계획 수립 지원 등만 수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국회에서는 ‘공사중단 장기방치 건축물의 정비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 2건 발의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상임위 계류 중이다. 지난해 10월 권영세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안전조치 명령의 실효성 확보 수단으로써 이행강제금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이 골자다. 총선국면 속 관심도가 낮아지며 자동 폐기가 예상되지만, 중요 현안인 만큼 다시 논의에 불씨가 붙을 가능성도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방치 건축물 문제) 해당되는 지역구들의 민원은 살아있다”며 “같은 선택지로 가져올지, 새로운 선택지로 만들지는 국회의 입법 권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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