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6시간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 원인을 네트워크 연결장비인 라우터 포트 불량으로 결론냈다. 전산망 오류가 발생한 지 8일 만에 하드웨어 이상을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장비 불량의 원인까진 알아내지 못했다. 고장이 났을 때 작동하는 현행 이중화 시스템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데 언제 또 장애가 발생할지 모르는 불안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허울 좋은 IT강국의 민낯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원인 진단은 두 차례나 바뀌었다. 전산망 마비 직후엔 네트워크장비인 L4 스위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과정에 오류가 생겼다고 했다가 해결되지 않자 L4 스위치 자체가 문제라며 장비를 교체했다. 그래도 지연 현상이 이어지자 라우터를 분석한 끝에 포트 불량을 발견했다고 한다. 소프트웨어 문제가 아니라 전원 콘센트에 코드를 꽂았는데도 전기가 통하지 않은 하드웨어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헛다리 짚다가 복구가 늦어진 셈이다.
원인을 찾아냈다지만 의문투성이다. 장애가 어디서 발생했는지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사고 발생 시 원인 진단 과정도 기본 매뉴얼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장비가 2016년 도입돼 노후한 건 아니라는데 왜 고장이 생긴 건지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유사시에 대비한 이중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따져볼 사안이다. 행정망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사소한 오류라도 바로 다른 시스템이 작동해야 마땅하다.
지난 일주일 새 행정망 먹통이 빚어진 게 네 차례다. 지난 17일 공무원 전용 행정전산망 ‘시도 새올행정시스템’과 온라인 민원서비스 ‘정부24’ 마비를 시작으로 22일 주민등록시스템 일시 장애, 23일 조달청 ‘나라장터’ 불통에 이어 24일 모바일신분증 웹사이트 및 앱 장애까지 정부 기관의 주요 서비스들이 차례로 멈췄다. 연중 한 차례 날까 말까 한 사고가 한꺼번에 터졌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원인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언제 또 다른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포트장비를 교체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땜질 처방에 그친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 벌어진 사고가 누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제기된 의문과 문제점들을 꼼꼼히 되짚어보고 시스템 구축 초기 단계로 돌아가 전면적인 점검과 보완이 필요하다. 행정망 마비로 인한 유뮤형의 손실은 막대하다. 모바일신분증이 필요한 금융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1600건의 입찰 공고가 연기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면 경제 활력마저 떨어질 수 있다. 철저한 원인규명과 함께 초연결 시대 닥칠 수 있는 ‘디지털 재앙’을 염두에 두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