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에 이어 민주노총이 정부가 요구해온 노동조합 회계공시제도를 수용하기로 했다. 이로써 회계공시 의무화를 노조탄압이라며 반발했던 양대 노총이 모두 돌아섰다. 공시를 하지 않은 노조에는 정부가 세금혜택을 주지 않기로 하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그동안 ‘노조 자율성 보장’이란 명목으로 성역처럼 여겨온 회계장부를 공개하기로 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정부의 강경한 원칙 고수도 한몫했다.
거대 노조의 ‘깜깜이 회계’는 그동안 노동계 안팎으로 비난의 대상이 돼온 게 사실이다. 조합원이 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한노총과 민노총이 해마다 거둬들이는 조합비만 1000억원 이상에 국고지원금도 지난 5년간 1500억원에 달한다. 조합원과 국민세금이 들어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씀씀이를 자세히 밝히는 게 당연하다. 떳떳하게 썼다면 공개 못할 이유가 없는데도 노조탄압이라며 거부해왔다. 수천억원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다 보니 정부 보조금으로 해외출장도 가고, 조합원 자녀 영어캠프비로 쓰는 등 비리도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노조의 회계투명성을 노동개혁의 첫걸음으로 추진해온 이유다. 회계자료 비치와 회계공시 시스템을 만들어 불응 시 조합비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지 않도록 관련 시행령을 개정한 것이다.
양대 노조는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 혜택을 못 받게 하자 노조원의 불이익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정기부금으로 돼 있는 노조비는 연말에 낸 돈의 15%를 세액공제로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상급단체까지 회계공시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자 마지못해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양대 노조는 “개정된 노조법·소득세법 시행령은 모법이 위임하지 않은 내용을 노조에 강요해 위임입법 범위를 일탈한 것”이라며 재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여전히 으름장을 놓고 있다.
노조의 회계자료 공개는 법에 규정된 노조의 의무다. 이제 정상화의 첫발을 뗀 것뿐이다. 정부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모양새라며 반발이 있지만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공정에 민감한 MZ노조는 조합비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지 못한다며 불만이 많다. 이런 의구심을 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노조의 연차 회계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조합원들에도 사본을 제공하고 있다. 언제든 노조원이 요구하면 열람이 가능하다.
투명성 요구는 시대 흐름이다. 노조도 시대에 맞게 바뀔 필요가 있다. 노동환경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귀족노조’라는 국민적 반감을 없애고 일자리 상생에 기여해야 한다. 정부도 노조를 적대시하는 정책 대신 노동개혁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