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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유엔군사령부와 한국 외교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영국 연방 오스트레일리아 연대 제3대대 소속 스미스(W.S. Smith) 이등병, 1951년 2월 4일 전사, 향년 21세. 학회 참석차 내려간 부산에서 잠깐 짬을 내어 들른 남구 대연동 소재 유엔기념공원에서였다.

한창 꽃다운 나이에 이름도 몰랐을 머나먼 이국땅에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외국 장병들의 묘비명이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몇년 전 시드니와 캔버라를 방문했을 때 그곳 거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싱그러운 청년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외에도 미국, 캐나다, 영국, 뉴질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노르웨이 등 11개국 참전용사 2309명이 그곳에 잠들어 있었다. 새삼 대한민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유엔군 일원으로 참가한 이들의 헌신과 희생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결정적인 힘의 하나가 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엔기념공원 내력을 보니 이곳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장소가 아닌가 생각됐다. 6·25전쟁 당시 주한 유엔군사령부가 전사자들을 위해 묘역을 조성했고, 전쟁이 끝난 이후 한국 정부의 토지 기증과 유엔 총회 결의에 따라 이곳이 세계에서도 사례를 찾기 어려운 유엔 관할하의 기념묘지가 됐다. 대한민국 건국과 발전에 있어 유엔으로 대표되는 국제사회의 각별한 지원과 나아가 참전용사들의 목숨을 버린 헌신이 밑바탕에 있었다는 점을 유엔기념공원은 무언중에 말해주고 있었다.

6·25전쟁 중 유엔 회원국 16개국이 병력을 파병하고 다수 국가가 의료 지원을 한 사실, 그리고 전쟁 이후에도 유엔군사령부가 한반도에서 정전협정의 관리 주체가 돼온 사실은 여러 각도에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남북관계에서 주목할 만한 진전이 있어 정전협정을 대체한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 유엔군사령부의 법적 지위가 유엔 총회에서의 논의 등을 통해 변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 한반도 비핵화에 있어서 북한이 가시적인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남북한 군사적 신뢰 구축이나 평화협정 체결 진전도 없는 현 상태에서는 유엔사가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의 하나로 존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유엔사의 멤버가 되고 있는 국가들이 국제사회에 대한 우리의 중견국 외교에서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필자도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그리스, 태국 등을 방문할 때 직접 경험했지만 이들 국가에는 6·25전쟁 참전기념비도 설치돼 있고 참전용사회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각국에 파견된 우리 외교관들이나 무관들은 해마다 개최되는 6·25전쟁 기념행사를 지원할 뿐 아니라 평시에도 이들 단체와 밀접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제는 그들을 도와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참전국들의 인적·물적 네트워크들이 한국의 공공외교를 위한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에 직면해 우리 정부가 특히 6·25전쟁 참전국들에 마스크를 비롯한 방역용품을 제공하면서 국제적 이미지를 제고한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이 할 수 있는 공공외교 방식이다.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에서는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한국의 역사와 안보 정책을 설명하는 국제안보 특별교육과정을 3년째 운영하고 있다. 올해 참전 16개국 주한외교관 및 무관들에게까지 참가 대상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공공외교 확대의 일환이다.

70년 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유엔군사령부와 유엔 참전국들은 한반도 평화와 한국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외교자산으로 적극 활용돼야 한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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