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남영호·1993년 서해훼리호…숱한 참사에도 반복되는 슬픔과 눈물, 그리고 잊혀지는 기억들
벌해야 마땅한 ‘상습적 사고유발체계’…대한민국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언제 걷어낼수 있겠습니까
자꾸 눈물이 납니다. 끝내 시신으로 돌아온 그들,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할 때 엄마에게 보낸 동영상, 침몰하는 선실에서 가족에게 보낸 학생들의 SNS 메시지를 접할 때면, 내 자식, 내 동생의 모습과 오버랩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족을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간 아껴두었던 “엄마 사랑한다”, “아빠, 미리 말할게, 사랑해”라는 말을 전합니다.
“아들 괜찮아?”…“아들~~~~”…“아들 대답 좀 해봐”
하염없이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은 바로 우리 모두입니다.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누가, 왜, 이들에게 고통을 안기는지를 따지다 보면 말입니다. 그간 숱한 참사를 겪었는데, 비슷한 원인의 사고가 계속 반복됩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사무치게 아파하고 분노합니다. 하지만 몇달 지나지 않아 잊고 맙니다.
그리고 그들은 재발 방지 대책이라고 숱한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다시 사고를 냅니다.
1970년 12월, 남영호 침몰 사고는 338명을 애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원인은 항해 부주의와 적재량 초과였습니다. 1987년 6월, 35명의 생명을 앗아간 거제 극동호 화재는 기관실 엔진의 부실 점검때문이었습니다. 30명이 숨진 1994년 10월의 충주호 관광선 화재사건 역시 극동호와 비슷한 원인이었습니다.
1993년 10월 10일 위도 서해훼리호 침몰도 남영호 사건 판박이 입니다. 과적에다 악천후 속 무리한 출항, 선사측의 안전수칙 무시 때문에 발생했고, 정부의 소중한 인재들과 위도 주민 292명이 숨지고 말았습니다.
2014년 다시 진도에서 더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력 1년도 안된 3등 항해사가 배를 몰다 사고가 났습니다. 선장은 사고 날때 조종실에 있지도 않았답니다. 그리고는 남들보다 먼저 배를 떠났습니다. 자기 선원들에게만 탈출하라고 지시했다지요.
방재-구조 요원들이 금과옥조처럼 되새기는 말이 있습니다. ‘사고는 사고에서 배우고, 재발을 막는다.’그런데 현실은 다릅니다. 대형 참사는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더이상 ‘안전 불감증’이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불감증’은 자칫 어쩔 수 없다는 체념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되풀이되는 악행은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방재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가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안전시스템 전반의 ‘결핍’ 이지요.
“누군들 승객을 죽이고 싶었겠는가”라는 이유로, 개별 참사의 주요 책임자들은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받습니다. 비슷한 원인의 참사가 되풀이된다는 건 ‘고의’에 가깝습니다.
2014년 진도 사건 승무원과 선사는 과실로 처벌받을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상습적인 ‘참사 유발 시스템’은 ‘고의성’을 인정해 중벌에 처해야 마땅합니다.
유기체의 생존에 필요한 여러 요소 중, 가장 부족한 딱 한 가지에 의해 해당 유기체의 건강 수준이 결정된다는 ‘최소율의 법칙(law of the minimum)’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다른 건 다 멀쩡해도 위장 종양 하나 때문에 치명적인 환자로 분류되는 이치입니다.
엔진 점검, 준법 운항이 전부는 아닙니다. 소명의식과 휴머니즘, 대통령의 약속 이행, 실전 같은 구조연습, 엔진 및 승무원 상태 확인, 현장감 있는 지휘관의 배치, 민간업자의 감독, 구조장비 조달 및 배치 체계 확립, 출동 매뉴얼, 참사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 정밀한 분석, 공유와 실천, 국정감사 지적사항의 이행 등 수백~수천 가지 요건 중 하나라도 과락이면, 참사는 재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보이십니까.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는 참사 조짐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지금의 슬픔과 분노가 그 검은 그림자를 말끔히 걷어내는 에너지로 승화되었으면 합니다. 이제는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