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역대 최강의 대통령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민주당 의원의 푸념입니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부정 선거로 당선됐음에도, 공약을 줄줄이 파기를해도, 야당은 물론 여당을 무시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그의 말도 이해가 갑니다.
지난해 5월께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졌고 6월엔 검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김용판-원세훈’ 두명의 인사를 기소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부정하게 치러졌을 수 있다는 것이 검찰 기소의 의미입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기간 때에는 국군 등 국가정보원 이외의 국가기관들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같은해 9월에는 ‘모든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20만원을 드리겠다’던 박 대통령의 공약이 ‘후퇴 또는 파기’됐습니다. 최근에는 공기업 개혁을 외치던 박근혜 정부가 업무 연관성이 없는 정치권 인사들을 대거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했습니다. 야당은 줄기차게 지난 1년동안 박 대통령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최근 여론조사(17일 발표ㆍ리얼미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56.4%로 나타났습니다. 대선에서 거둔 박 대통령의 득표율(51.6%)보다 웃도는 수치입니다. 이를 거칠게 분석하면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 이후 박 대통령 지지로 입장을 바꾼 것입니다. 집권 1년차 전직 대통령의 지지율로만 보면 역대 2위(1위 김대중 60%. 3위 김영삼 55. 4위 노태우 45%. 5위 이명박 32%. 6위 노무현 22%)에 해당하는 지지율입니다. 그간 민주당이 박 대통령을 수식할 때 사용했던 ‘오만’, ‘불통’, ‘독선’ 등의 단어들이 무색해지는 구간입니다.
‘역대 최악 대통령’이라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지만, ‘기이한’ 지지율이 장기간 계속되자 이제는 다른 방법의 해석이 고개를 듭니다. 박 대통령의 개인사가 대통령 지지율의 강한 기반이 되고 있다는 해석이지요. 민주당의 한 인사는 “여성에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흉탄에 잃었고 결혼도 못했다. 아이도 없다. 지지율 저변엔 대통령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있다. 이는 정책 실패와 야당의 공격으로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남편과 지켜야할 가족이 없으니 친인척의 부정과 비리도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지지율을 40%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 그의 말처럼, 지난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낮은 수치까지 떨어진 때(6월께)가 41%였습니다.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한 곳에 들어서게 된 감성 접근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같은 해석이 실제라면 앞으로도 민주당은 설 땅이 없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체질 개선 중인 것이 민주당의 현재입니다. 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당초 23일이었던‘박근혜 정부 1주년 평가보고서 발간 행사’ 대신, ‘3차 혁신안’을 당일 발표키로 한 것 역시 대통령 공격과 민주당의 변화라는 두가지 축 가운데 ‘민주당의 변화’에 무게를 둔 것과 무관치 않습니다. 범야권으로 보면 안철수 의원과의 연대 또는 경쟁을 하기 위한 포석 성격도 있겠지요. 김한길 민주당 현 대표는 ‘변화와 혁신’을 민주당이 살 길로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반면 민주당 내에는 다른 목소리도 있습니다. ‘야성을 잃은 민주당’, ‘야당 답지 못한 야당’이 민주당의 당 지지율이 10% 안팎에 불과한 이유라고 보는 세력입니다. 당 지도부와는 확연히 다른 평가죠. 평가가 다르기에 해법도 다릅니다. 주로 초재선 의원들이 주축이 돼 모인 혁신모임(더 좋은 미래)에선 ‘야성 회복’이 민주당이 살 길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미래’가 1차 회의에서 삼성전자의 백혈병 사고 관련 문제를 꺼내든 것 역시, 한국 사회의 여러 병폐중 하나인 ‘재벌의 전횡’ 문제를 쟁점화 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입니다. 이날 모임의 결론은 결국 ‘경제민주화’였습니다.
지도부와 일선 의원들이 현재 민주당의 위기에 대한 원인 분석과 이에 대한 해결방법이 다르면서 수면 아래로 잠복해있던 ‘노선 갈등’이 표면화 되고 있습니다. 적을 앞에 두고 분열해선 안된다(적전분열)는 이유로 표출되지 않았던 당내 의견들이 솟구쳐 오르는 상황입니다. 상징적인 사건은 지난 20일 일어났습니다. 민주당 내 대표적 강경파로 분류되는 정청래 의원이 꺼내든 지도부 교체론과 문재인 구원등판론을 꺼내든 것입니다. 정 의원은 현재의 지도부로는 6월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가 없고, 대신 문재인 의원이 대선에서 얻었던 ‘48%’의 지지율로 당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당 지도부가 편할 리가 없지요.
민주당 ‘노선’의 무게추가 강경쪽으로 쏠릴 지, 온건한 방향으로 계속 유지될지는 오는 5월 열릴 원내대표 선거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3선급 의원들 5~6명이 후보군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몇은 물밑 교섭으로 단일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집니다. 원내대표 선거의 핵심은 강경파 의원이 당선되는지, 온건파 의원이 당선되는지로 모입니다. 민주당 원내대표에 누가 당선될지는 명확치 않지만, 앞으로 남은 4년 동안 ‘역대 최강 대통령’을 상대로 쉽지않은 ‘전투’가 될 것임은 자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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