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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유머포비아’ 한국 정치…인신공격 · 독설만 난무
소통의 열쇠 ‘웃음·유머’필요
지난해 대선을 앞둔 박근혜 대통령, 당시는 후보 자격으로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학창시절도 얘기하고, 노래도 불렀다. 진행자가 우스갯소리를 주문했다. 그러자 대뜸 박 대통령이 얘기를 꺼낸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3단계 아세요?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집어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웃겼다. 다 아는 얘기인데도 근엄한 얼굴의 박 대통령이, 말수 적기로 유명한 박 대통령이 하필 이 오래된 유머를 꺼냈기 때문이다. 유머 자체가 웃겨서라기보다는 근엄한 표정으로 애써 학습한 듯 해묵은 유머를 풀어내야 하는 상황에 국민은 웃었다. ‘블랙코미디(black comedy)’다. 박 대통령 얘기만이 아니다. 66년 헌정과 함께한 우리 정치 얼굴은 늘 근엄하고 심각하다.

‘투쟁’ ‘극복’처럼 치열함이 우리 정치를 지배했다. 여당 대표가 ‘보온병’과 ‘포탄피’를 구별 못하는 어이없는 코미디, 또는 블랙코미디는 있지만 유머는 없다. 해학과 풍자가 있었던 봉건시대만도 못하다. 이러다보니 지난해 대선에는 박근혜 캠프와 안철수 캠프 사이에 각기 몸담은 친구들이 ‘농담삼아(?) 한 말’로 정색하기도 했다. 한국 정치에서 유머는 그저 ‘실없는 말’일 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몸싸움과 고소ㆍ고발이 난무하는 정치판일수록 웃음과 유머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사안일수록 날선 공방보다는 유머 한 마디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뿔난 말’에,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에 안 해본 게 없어 모든 걸 ‘해봐서 잘 알고 있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입담에 국민은 이들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낸다. 우리 정치인은 ‘유머포비아(humorphobia)’인데, 우리 국민은 그 불모지에서 유머를 찾아내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장황한 연설보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유머 한 마디가 소통의 윤활유다.

박인옥 유머플러스센터 소장은 “정치인의 가시돋친 말에 국민은 상처 받는다. 직설적인 인신공격 대신 유머가 섞인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면 훨씬 성숙한 정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왜 정치감각과 유머감각이 일맥상통할까.

한광일 국제웃음치료협회장은 “따뜻한 유머 한 마디는 곧 ‘함께하자’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서로 마음을 터놓고 생각을 나눠보자는 개방적 사고가 유머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리더십, 강행처리와 결사저지에 익숙한 한국 정치문화에 웃음과 유머는 뜻밖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한 회장은 “박 대통령도 비록 ‘썰렁 유머’지만 어쨌든 나름 그 이미지를 굳히며 유머를 통한 소통의 가능성을 던져줬다. 인사잡음, 여야대립으로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커질 때일수록 유머로 상생과 공존의 정신을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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