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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리엣 골드스미스大 디자인대학장
최근 트렌드는 ‘무엇’보다 ‘왜?’
디자인과 지질학·의학·철학·역사학 등 연결
사회통합·정치변혁 가능하게 할 훌륭한 도구



[런던=윤정식 기자] 해골ㆍ죽음이라는 어두운 소재로 영국 현대미술의 선두주자가 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그의 모교 골드스미스대학은 디자인을 인문학점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각으로 유명하다.

“머리가 바뀌지 않으면 손과 발이 바뀌었다고 가는 길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디자인은 결국 머리를 바꿔주는 인문학입니다.” 줄리엣 스프라크(Juliet Sprak) 골드스미스대학 디자인대학장은 여장부였다.

지난해 12월 초 만난 줄리엣 학장이 호탕한 웃음과 함께 줄줄 설명해 내려가는 말들은 기발했다. 솔직히 문외한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웠다. 줄리엣 학장이 말하는 미래 디자인의 역할은 정치를 바꾸고 사회 통합도 이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다.

디자인이 정치를 바꾼다고? 이해가 안 된다. 현실에서의 사례를 부탁했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들이 TV토론을 하면 모니터에서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예전 발언이 검색되고 현재 그 연설을 듣는 이들의 실시간 반응이 올라오는 것만으로도 투표율을 올리거나 후보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물론 기술을 바탕으로 해야겠지만 이미 현실에서 가능한 디자이너의 역할들이다. 이런 게 정치와 디자인의 결합이다.”

실제로 최근 골드스미스대학이 시작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줄리엣 학장은 “일부 지방자치단체들과 함께 지역 내 초등학교 교실 공간을 바꾸는 작업을 협업하고 있다”며 “책상과 걸상, 칠판의 배치와 모양, 학생들이 움직일 수 있는 동선만 바꿔도 지금보다 학생들의 발표력이나 수업에 대한 집중도가 올라가고 보다 자율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 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런던 한복판의 하이드파크 중심에 단상이 하나 있는데 이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며 “이곳은 누구나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때 아무런 제약 없이 이를 성토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저 길거리에서 떠드는 미친X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골드스미스대학의 한 한국인 학생이 디자인 한 작품도 소개했다. 이름은 ‘런던데리’. 동네 한복판의 벽으로 인해 주민들 간 소통이 단절된 마을이 있었는데, 이 벽을 오히려 서로 참여를 이끌어내는 공간으로 디자인해 바꾼 것이다.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던 것은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골드스미스대의 교육 철학 덕이다. 줄리엣 학장은 “학생을 계획된 틀에 넣지 않고, 졸업할 때까지 질문을 통해 모든 커리큘럼과 수업 방향을 자기 자신이 짜 나갈 수 있도록 한다”며 “디자인 산업 내에서도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무엇’을 ‘왜’만들어야 하는지를 요구하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왜?(Why?)’를 반복하는 디자인이다 보니 정치ㆍ사회ㆍ경제를 모두 고려하는 디자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는 “우리 디자인교육을 가장 명확하게 대변하는 단어는 융합”이라며 “지질학, 의학, 정치, 인문, 철학이 모두 연결된다”고 밝혔다.

한국 디자인 수준에 대한 쓴 소리도 있었다. 줄리엣 학장과의 인터뷰에 동석한 골드스미스대학 부설 ‘예측ㆍ혁신 연구센터(Prospect and Innovation Research Centre)’의 장 마이크 월리(Mike Walle) 센터장은 최근 영국의 유명 디자인포럼에서 한국의 디자인 산업을 주제로 토론한 적이 있다며 “연구ㆍ개발((R&D)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으로 한국은 전 세계를 사로잡은 디자인을 대다수 개발했지만 아직 아시아를 대표할 디자인 수도로서는 자격이 부족하다”며 “리더가 되려면 인문학적 능력을 바탕으로 다음 행선지가 어디인지 제시하고 이를 설득할 수 있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크 센터장은 “골드스미스 디자인대학 유학생들 가운데 한국 출신 학생들의 비율이 미국 출신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중국 학생들보다 많은 한국 학생들이 본교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디자인의 미래가 밝아보인다”고 말했다.

yj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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