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조민선 기자]박근혜(60)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가 5년 만에 다시 대권 가도에 첫발을 내디뎠다. 22살에 어머니를 잃고 ‘퍼스트레이디’를 맡았던 그가 38년만에 청와대의 주인이 되려 하는 것이다. 10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는 아버지의 ‘그늘’과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로 한 발짝 도약을 꿈꾸는 ‘광장’이자 시발점인 셈이다.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대통령이 총탄에 쓰러진 건 오래된 과거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박 후보는 여전히 ‘비운의 공주’로 남아 있다. 한국정치사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게 박 후보다.
1974년 육 여사의 영면은 대통령의 딸, 평범한 모범생이었던 박 후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는 권력투쟁의 중심부 청와대의 안주인이자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해야 했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은 당시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수만볼트의 전기가 훑고 지나가는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50~60대 아주머니들이 으레 “아이고~우리 공주님”하며 애틋하게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운의 공주’는 그러나 나약하지만은 않았다. 아버지가 암살당한 1979년 10월까지 6년여간을 퍼스트레이디로 아버지 곁을 지키면서 어머니의 빈자리를 차분하게 채웠다. 지금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도 그의 손을 거치며 풍파를 헤쳐 노년층과 장년층에는 ‘올 곧은 박근혜’의 이미지를 새겨 놓기도 했다.
박 후보가 이날 출마 선언문을 “어머니가 흉탄에 돌아가신 후,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빈자리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 때문이었다”로 시작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정치인 박근혜’의 길은 순탄하지는 않지만 그의 정치적 역량을 시험하는 리트머스지로도 통한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당이 위기에 처했을 당시, 당 대표를 역임하며 쇄신을 이끌었으며, 모두가 안 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이번 4ㆍ11 총선에서도 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은 ‘정치인 박근혜’의 아우라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2007년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하며 또다시 5년을 절치부심해야 했다.
박 후보의 과거는 그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정치적 경험의 토대가 됐다. 10대부터 청와대 생활을 하며 50여년간 국가와 민족, 국민 같은 거대한 담론을 넣어두고 고민을 해왔다는 점은 박 후보가 늘 강조하는 경쟁력이다. 그가 출마 선언문에서 “국민의 애환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저에게는 국민이 곧 어머니였고, 가족이었다”고 말한 대목은 이를 잘 말해준다.
헤럴드경제가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박 후보의 장점과 과제를 조사한 결과, 박 후보의 강점은 ▷원칙과 신뢰 ▷오랜 정치경험 ▷탄탄한 정치적 기반 등을 꼽은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은 대선후보 박근혜를 옭아매는 굴레이기도 하다. ▷소통의 부재 ▷과거(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 5ㆍ16 쿠데타와 유신체제, 정수장학회, MBC 문제 등)의 짙은 그림자 ▷부족한 융통성 ▷복고적 이미지 ▷지나친 보수색채(국가관 논란 등) 등은 박 후보가 털고 가야 할 문제로 꼽는다. 이와 함께 다양한 집단을 포용하고 미래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도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양날의 검’인 그의 강점과 과제는 그를 ‘49% 마의 벽’에 가둬두고 있다. 38년 만에 다시 청와대에 입성하는데 1%가 부족한 셈이다. 박 후보가 여권주자로는 드물게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양대 화두를 선점한 데 이어 이날 출마선언에서도 이 두 문제를 강조한 것은 그의 ‘과거’와 ‘보수’에 갇힌 이미지를 털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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