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은 규칙에 우선한 상위개념
경선룰 논쟁은 일종의 규칙 문제
규칙을 원칙처럼 받아들이면
편의적 원칙주의자로 전락할수도
규칙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 또는 제정된 질서”이다.
반면 원칙은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상 네이버 국어사전)이라고 정의한다. 얼핏 보면 비슷하기도 한 두 단어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원칙은 규칙의 상위 개념이라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까지 들먹이는 이유는 당내 경선 룰을 둘러싼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소위 비박(非朴) 3인방 간의 소모적인 갈등의 원인을 규명해보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 박 전 위원장 측은 새누리당의 경선 룰을 둘러싸고 원칙을 지키기 위해 양보하지 않았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당내 경선 룰은 원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농구도 그동안 수없이 규칙을 개정해왔다. 일종의 흥행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은 바뀌지 않았다. 농구의 경우 과거에는 3점 슛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미국이 60년대부터 이 개념을 도입했다. ‘규칙’이 변한 것이다. 하지만 농구의 기본적인 규칙, 그러니까 원칙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손으로 공을 던져 상대의 골에 넣는다’는 농구의 근본적인 규칙이 변한다면 더 이상 이를 농구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 전 위원장의 경선 룰에 대한 완고한 입장은 원칙을 지키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박 전 위원장이 지켜야 할 ‘원칙’은 바로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만일 박 전 위원장이 원칙주의자라면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어야 하고, 그래서 최소한 비박 주자들과 토론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박 전 위원장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지극히 권위주의적이었고 오히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훼손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경선 룰을 둘러싼 박 대 비박 주자들의 싸움은 박 전 위원장의 승리로 끝난 것 같지만 사실은 박 전 위원장이 패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박 전 위원장은 권위주의적이고 불통이며 기득권적인 이미지를 보여줘 오히려 대선가도에 빨간불을 스스로 켠 꼴이라는 말이다. 또한 지나친 원칙주의의 강조는 박 전 위원장을 자기모순에 빠뜨릴 수 있다.
왜냐하면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것은 경선 룰을 바꾸는 일보다 엄청난 변화이고, 그렇기 때문에 경선 룰이 원칙에 관한 문제라면 당명 개정 역시 당연히 원칙에 관한 문제여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당권ㆍ대권 분리조항을 비대위원장에게는 예외로 하기로 한 것도 규칙을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도 박 전 위원장 방식대로라면 원칙 위반이 되는 셈이다. 박 전 위원장이 자신의 주장처럼 원칙주의자라면 그리고 규칙도 원칙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앞서 언급한 모든 일들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결국 박 전 위원장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원칙을 내세우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원칙이 아니라 단순한 규칙이라고 치부한다는 ‘편의적 원칙주의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모습으로는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 이런 모습을 가지고 대세론을 유지하며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기적이라는 말이다. 당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이를 수렴하는 모습이야말로 대선 승리를 위한 가장 중요한 동력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