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야 정치권은 각 대선주자 진영 간 입씨름으로 시끄럽다. 물고 뜯는 것이 정치의 속성이라지만, 한번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라 바깥으로부터는 위기의 음침함이 밀려오고, 나라 안으로는 곳곳에서 갈등의 파열음이 커지고 있지 않은가.
1987년 6월 시민항쟁 이후 5명의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는 동안 많은 성취도 있었지만, 삶에 희망이 커질 거라는 국민적 기대가 빗나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개발독재의 통제력이 사라진 시장에서 재벌의 힘은 불쑥 커 버렸고, 부실한 덩치 키우기는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이후 공적자금 투입과 구조조정을 거쳐 부실은 가계와 재정으로 옮겨졌다. 시장을 공정하게 만들고 사회를 조화롭게 만들 실효적 정책 프로그램은 실행되지 못한 채 정권마다 비생산적인 정쟁과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떠밀려갔다. 이 와중에 일부 대기업 노조는 강성투쟁으로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쳤다. 기업들은 그 부담을 전가할 방책으로 비정규직과 사내하도급을 늘렸다. 정치는 고용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역량을 갖지 못했다.
그리하여 고용불안과 취약한 안전망, 임금과 복지의 차별 속에 무려 절반의 근로자들이 온전한 시민권자가 아님을 뼈저리게 체득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도 저물었다. 부모의 재산 격차가 자녀들의 교육 격차와 미래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복지의 영역은 빈약한 사회적 시민권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요즘 정치권에서 무상복지 시리즈가 줄을 잇고 있지만, 정작 전 국민 대상의 보편적 복지 시스템인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임금근로자 중에 400만명, 영세자영업자 500만명은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실직하거나 가게 문을 닫을 때 그냥 낭떠러지에 내몰릴 처지이다. 국민연금도 무려 650만명이나 안전망 바깥에 놓여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명박 정부 하에서, 많은 국민은 일방적인 국정운영 속에 공정은 되레 뒤틀리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현실을 감지하고 시민권의 소중함을 다시 자각했다.
대기업의 ‘성공’ 속에서도 자신은 성공의 기회로부터 멀어져가고 힘든 삶을 지탱해줄 사회적 장치도 취약함을 발견하고는, ‘반쪽’ 시민권의 실상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T.H 마셜의 말을 빌리면, 시민권(citizenship)은 시민적(civic) 권리, 정치적 권리, 사회적 권리로 확장된다. 그런데 우리의 시민권은 온전하지도 못하고 확장되지도 못했다. 반면 스마트 시대에 정보와 주권의식으로 무장한 새로운 유권자의 영향력이 커졌다. 민주화 이후 여섯 번째 대통령 선거는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은 이제 시민권을 제대로 복원하고 사회적 시민권까지 넓히라고 요구할 것이다. ‘온전한 시민권의 시대’, 이것이 이번 대선의 키워드이다.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 성장, 정의 등 좋은 말을 나열하는 일은 대선 주자 누구나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계몽이나 선동이 아니라, 시민과 소통하고 동행하려는 정치적 의지이다. 무한 정쟁이나 급진적 단방약이 아니라, 조화롭고 정의로운 민주정치를 통해 착실하게 시민권을 확장함으로써 시민들의 기회와 행복이 공동체 내에서 커져갈 것이라는 신념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시장경제의 장점을 살리되 그 위험으로부터 삶을 지켜줄 수 있는 정치적 비전을 포함하는 것이다. 나아가 진정한 시민권의 시대란 권리뿐만 아니라 책임과 양보를 동반해야 함을 정직하게 말할 용기도 가져야 한다. 이미 두 번이나 정권교체를 경험한 국민들 앞에서, 대세를 관리하며 적당히 분장하려하거나, 정권 심판론을 앞세워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거나, 정곡을 우회하는 위로의 강연에 머무른다면 미래는 없다.
<헤럴드경제 고문ㆍ전 국회의원>
김성식 前의원은 누구
▷서울대 경제학과 졸
▷경기도 정무 부지사
▷18대 국회의원(무소속)
▷한나라당‘ 민본21’ 간사
김성식 전 국회의원은 기성 정치권에 환골탈퇴의 개혁을 요구하다 벽에 부딪히자, 과감하게 정당의 틀을 깨고 19대 총선에 무소속 출마했다가 낙선했습니다‘. 아름다운 도전’에 나섰던 김 전 의원이 헤럴드경제 칼럼리스트로 돌아와 정치ㆍ 경제ㆍ사회적 갈등을 꼼꼼하게 진단하고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