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통합진보당 당권파가 이번에도 ‘대리운전’을 택했다. ‘당권파=종북세력’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강해지면서 당권 경쟁에 자파 후보를 내는 대신 종북(從北)색채가 비교적 옅은 강병기 후보를 내미는 ‘꼼수’를 낸 것이다. 통진당 부정경선 사태가 벌어졌을때 이정희 전 대표는 얼굴마담, 실세는 경기동부연합과 이석기 당선자‘라는 해석과 같은 맥락이다.
오는 29일 열리는 통진당의 전당대회는 2파전 양상으로 치러진다.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과 강병기 전 경상남도 정무부지사의 양파전이다. 강 전 부지사는 이석기ㆍ김재연 두 의원의 제명에 대해 “자진사퇴가 바람직하고, 제명 여부는 2차 조사결과가 나온 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혁신비대위측이 추진중인 두 의원에 대한 즉각적인 제명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혁신비대위 측은 강 전 부지사와 당권파가 사전에 입장조율을 했을 것이라 관측하고 있다. 당권파 오병윤, 김선동 의원 등이 당권 도전에 출마하지 않는 대신 당권파 입장을 강 전 부지사를 통해 관철시키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혁신비대위측 관계자는 “지난 5월말부터 당권파측 인사들이 부산 등지를 돌며 강 전 부지사와 사전 입장 조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권파측은 강 전 부지사의 당선을 확신하는 분위기다. 당권파(경기동부+광주전남) 표에 강 전 부지사 측(부산울산)표까지 합하면 혁신비대위 측 표를 충분히 압도하고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권파 당원 비율이 압도적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전망은 현실화 될 공산이 크다.
관건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이의 처리과정을 지켜본 당권파 성향 당원들의 이탈표가 어느 정도 되느냐다. 통진당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건이 불거지면서 중앙위 폭력사태를 겪었고 수면아래로 가라앉았던 ‘종북 논란’의 핵심에 서게됐다. 당 지지율은 반토막이 났고 탈당도 줄을 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당권파 성향의 당원들이 기존대로 상명하복식의 일사분란한 투표행위를 반복할지는 ‘아직은 모른다’는 것이 혁신비대위측의 기대다. 또 당권파의 당권 재장악은 올 대선에서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를 어렵게하고, 최악의 시나리오인 분당까지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는 점에서 당권파 성향의 당원들이 투표에 신중을 기할 것이라 혁신비대위 측은 바라고 있다
사실 NL계의 ‘대리운전’ 관행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조직력은 강하지만 당의 간판으로 내세울만한 ‘얼굴’이 없는 탓에 자파출신이 아닌 인사들을 ‘얼굴마담’으로 계속 내세워 왔다. 지난 2007년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당권파가 아닌 권영길 후보를 당의 대권주자로 선출했다. ‘PD 후보가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당권파는 후보를 내지 못했다. 2008년 분당 직전 비대위원장으로 나선 심상정 비대위원장이나 최근까지 당대표를 맡았던 이정희 전 대표 역시 당권파 출신 인사가 아니다. 이 때문에 통진당 안팎에선 당권파를 후보를 배출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불임정파’라 지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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