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초안 마련 등 참여정부 국정운영 경험 또다른 짐 부담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우리나라 대통령’을 기치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대선 출마 선언문 첫 줄에 ‘불비불명(不飛不鳴)’이란 고사를 인용했다. ‘사기(史記)’에 등장하는 이 고사는 ‘날지도 울지도 않는 새가 한 번 날면 하늘 끝까지 날고, 한 번 울면 천지를 뒤흔든다’는 뜻이다. 그는 “암울한 시대가 나를 불러냈다”고 말했다. 그간 정치권과 거리를 둬왔던 행보와 출마를 하게 된 계기를 압축해 설명한 것이다.
문 고문은 자타 공인 ‘노무현의 사람’으로 꼽힌다. 사석에서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말도 ‘노무현의 그림자’다. 하지만 그가 변했다.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있었던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노무현’을 소환하지 않았다. 단 한 차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지칭하면서 노무현을 언급한 것이 전부였다. 노무현의 그림자에 머물러서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문 고문은 “안철수보다는 내가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고, “이명박 정부는 최악의 정권”이라는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문 고문은 자신의 경쟁력 1순위로 참여정부 국정 운영 경험을 꼽았다. 하지만 그에게 또 다른 짐이 될 공산도 있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초안을 참여정부가 마련했고,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서민경제 파탄과 뒤늦게 침략전쟁으로 평가받는 이라크 전쟁에 슬그머니 몸을 담갔던 것 역시 그에겐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를 의식한 듯 문 고문은 대선 출마 기자간담회에서 한ㆍ미 FTA 수정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ㆍ미 FTA의 경우 언젠간 해야 했겠지만 좀 더 국론을 모았어야 했다는 반성이 든다”고 말했다.
문 고문은 자신의 국정 운영 비전을 ‘공정한 사회’로 꼽았다. 구체적인 지향으로는 ▷공평과 정의를 바탕으로 한 경제민주화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리는 성장 전략 ▷강한 복지국가 ▷일자리 혁명 ▷아이들ㆍ여성ㆍ노인이 행복한 사회 ▷안전하고 평화로운 한반도 등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진보 진영의 약점을 의식한 듯 문 고문은 특히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다. “먼 훗날 ‘일자리 혁명을 일으킨 대통령’으로 평가받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일자리위원회를 내세웠다.
막판까지 출마를 만류하기도 했다고 한다. 심성 자체가 현실 정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을 내세운 그가 노무현을 넘는 ‘운명’을 만들지 궁금하다.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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