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의원 148人, 무엇이 그들을 절망케 하나
“경제는 선진국, 정치는 후진국이라는 국민적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국민을 하늘같이 받들겠습니다. 민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의원, 국민 행복을 만드는 의원, 국민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 품격 있는 국회가 될 수 있도록 국민만 보고 나아가겠습니다.”300명 19대 국회의원 모두가 한결같이 유권자들 앞에서 한 굳은 약속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국회에 들어온 148명 초선의원들의 포부와 다짐은 더 견고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새로운 국회에 희망을 꿈꾼다.
하지만 ‘희망’의 다른 말은 ‘절망’이다. 절망했기 때문에 “이제는 바뀌겠지” 하며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국민들은 왜 절망했을까. 한 대기업 임원은 “비유가 좀 그렇지만”이라고 전제하며 “국회의원이 되면 꼭 군복을 입은 예비군으로 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 국회의원 개개인의 이력은 화려하다. 판사, 검사, 대기업 임원, 고위직 공무원, 대학교수 등 한 사람 한 사람 면면만 놓고 보면 집단지성을 만들 여력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들이 ‘여의도 국회’라는 공간에만 들어서면 영락없이 집단최면에 걸린 듯 군중심리에 이리저리 쏠리고, 집단이기주의에 젖어든다.
흙탕물도 절반씩 계속 물을 채워넣으면 깨끗한 물이 되는 게 자연의 법칙이다. 국민은 죽어라고 4년마다 절반가량을 초선의원으로 물갈이하며 수질 관리에 노력했는데, 여의도 국회는 자연의 법칙, 사회과학적 원리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수질 관리를 했지만 변한 것이 없다. 변했다고 해도 체감할 수 없을 만큼의 변화다.
사실이 그랬다. “국회의원인 게 부끄럽다”며 스스로 금배지를 떼어버리는 의원들도 있었다.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정치에 대한 환멸은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 멱살을 잡는 사람만 바뀌었을 뿐 쌈박질하는 모습은 똑같았다. 국민들은 지겹도록 봐왔다.
‘절망’의 뿌리에는 잘못된 국회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문화에 흡수되면 소위 ‘잘나가는 의원’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왕따’가 되든지 아예 국회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 자신의 소신에 따라 올곧게 행동하려 치면 ‘그들만의 문화’가 거역할 수 없는 중력의 힘을 발휘했다. “좀 자중하지 그래. 튀면 좋을 거 없어”라는 말을 4년 내내 들어야 한다. “나도 해봤는데, 다 쓸데없어. 혼자 애쓴다고 변하는 건 없어”라는 말도 초선의원들의 어깨를 늘어뜨리게 한다.
그래도 “튀지 마” “나도 해봤는데”는 양반 축에 속한다. 현실 정치의 냉혹한 벽은 괴물과도 같다. “뭘 안다고, 초선 주제에….” 비아냥이 꼬리표처럼 달라붙는다. “다 이해한다. 나도 초선 때 그랬었는데 세상이 그런 게 아니더라고…” 하며 은근히 회유하기도 한다. “16대 때 ○○○ 의원과 ○○○ 의원, 17대 때 ○○○ 의원, ○○○ 의원이 그렇게 하다 망했다”며 간접적으로 압박도 한다.
회유와 간접적인 압박마저 약발이 안 먹히면 끝내는 “당론입니다. 당 지도부의 방침에 따르세요”라며 강제한다. “국회의원 한번 하고 그만둘 거야?”는 최후의 경고다. 공천줄을 잡아야 하는 초선의원들은 그 말에 절망하고, 꿈과 의지를 ‘벽 속에 가두어 버리고 마는’ 국회만의 문화다. 17대엔 무려 188명의 씨앗을, 18대에는 이를 박박 갈며 “나는 다르다”고 외치던 134명의 초선을 무너지게 한 ‘국회병’이다.
꼭 8년 전, 17대 국회가 끝날 즈음 한 초선의원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무에 기생하는 일년초인 ‘새삼’이라는 풀이 있다. 씨앗에 싹이 터서 다른 나무에 올라붙게 되면, 스스로 제 줄기를 끊고 그 나무줄기에 다시 뿌리를 내린다. 그러고는 흡혈귀처럼 나무줄기로부터 양분을 빨아먹는다. 철사 같은 줄기로 다른 나무에 정착해 제대로 자리 잡았다 싶으면 꽃과 열매 맺기에만 열중한다. 자기가 뿌리내린 나무가 죽든 말든….”
여러 번 죽음을 경험한 나무(국민)는 그래도 새삼(국회의원)에서 희망을 찾는다. 자성의 목소리가 많을수록, 기성 정치권에 물들지 않으려는 초짜(?)들이 많을수록 변화의 무게는 커진다. 국민들이 여전히 4년마다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들의 바람은 단순하다. 초선의원들을 절망하게 하는 잘못된 국회 문화를 바꾸고, 148명 초선의원들이 6g의 금배지를 600kg의 무게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배지 안에 새겨진 ‘나라 국’(國)자는 단순히 장식물이 아니다. 이것이 국민의 바람이고, 그래야 새삼이 뿌리내린 나무가 죽지 않는다.
<한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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