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사는 이영호(76) 씨는 선거철마다 ‘소음 스트레스’ 를 받고 있다.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확성기로 선거 운동을 하는 유세차량 때문이다.
이씨는 “너무 시끄럽게 선거 운동을 해서 오히려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며 “한 시간이 멀다하고 터져 나오는 음악소리 때문에 짜증이 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자정부터 4ㆍ11총선의 공식적인 선거유세가 시작됐다. 말이 유세지, 소위, ‘전쟁’이다.
선거 운동원들과 유세차량은 가능한 한 구석 구석, 가능한 한 큰 목소리로 자신들의 후보에 한표를 던져 줄 곳을 호소한다. 문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확성기에서 터져나오는 음악, 귀를 찢을 듯한 호소다.
이런 잡음들은 일반 시민들의 일상을 방해하고 있다.
선거 유세가 처음으로 시작된 지난 29일 서울 일선 경찰서에는 이씨처럼 ‘유세차량이 쏟아내는 소음 때문에 살 수가 없다’는 시민의 민원이 빗발쳤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주민인 한모(30ㆍ여)씨 역시 “오전에 유세 차량 때문에 집에서 잠을 자던 아이가 깼다”며 “집 안에까지 들리게 유세하는 건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종로구에 사는 박모(32)씨도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며 “저렇게 떠들어대니 호감 가던 후보들에게도 반감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선거소음’ 때문에 시민들의 불만이 극에 치닫고 있지만 이 ‘소음’을 현실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관련된 규제법이 마련되지 않았을 뿐더러 민원을 받은 경찰들도 몸을 사리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선거사범에 소음 기준은 없기 때문에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소음을 단속하고 다닐 수는 없다”며 “후보캠프에 자제하라고 요청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 역시 “민원이 들어와 데시벨이라도 측정한 후보가 당선되면 솔직히 곤란해지지 않겠느냐? 어차피 규제할 법도 없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선거철, 소음만 시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크기와, 장소에 제한이 없는 대형 현수막들도 시민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눈 길가는 곳이면 어디든 붙어 있는 현수막들은 도시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건물 입주자들의 일조권까지 침해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규격이 정해져 있고 지정 게시대에만 설치할 수 있는 일반 현수막과는 달리 선거 현수막엔 제한이 없다”며 “선거 사무실이 있는 건물주와 합의만 되면 규격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 박모(28ㆍ여) 씨는 “후보가 자신을 홍보하는 것도 좋지만 시민의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건 잘못된 것 아니냐”며 “작은 일도 챙기지 못하면서 무슨 정치를 하느냐”고 말했다.
서지혜ㆍ정진영 기자/gyelov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