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책제목으로 암시하는 문재인의 운명은 무엇일까.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15일 출간한 ‘문재인의 운명’을 통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부터 이별까지, 그리고 그들이 이뤄낸 참여정부에 대한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처음으로 끌어냈다.
노 전 대통령의 평생지기, 동반자였던 문 이사장은 이 책을 통해 ‘인간 노무현’에 대한 절절한 이야기를 담았다. 인권변호사에서 스타 국회의원, 잇따른 패배를 자양분으로 이룬 기적 같은 대선 승리, 부엉이바위의 비극까지. 책을 읽다 보면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알파이자 오메가였고, 노무현과 함께한 나날들은 책제목처럼 문재인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비화(秘話)를 밝히는 게 이 책의 목적은 아닌 듯하다. 그는 서문에서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기고 간 숙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노무현 시대를 넘어선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는 문 이사장은 “이제 노무현을 극복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친노(親盧)의 좌장인 그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고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 이사장은 지난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2주기를 전후해 다음 대선에서 민주 진영의 재집권을 위해 어떤 역할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4ㆍ27 재보궐선거를 통해 야권ㆍ진보 진영의 단일화 없이는 내년 총선ㆍ대선의 승리는 어렵다는 결론이 난 상태다. 이 같은 답안을 받아든 상황에서 그가 과연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차세대 주자로 꼽히던 친노 인사들도 그의 역할론에 무게를 싣는다. 민주당 내에서도 대선 경선의 흥행을 위해서라도 문 이사장의 참여가 필수라고 말하고 있다.
남은 것은 결국 문 이사장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노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그는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노 전 대통령처럼 주인공으로 나설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청와대 시절 “정치는 절대 안 한다”고 주군에게까지 선을 그었던 그였다. 다만 문 이사장이 책의 마지막에 남긴 한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당신(노 전 대통령)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박정민 기자/bohe@heraldcorp.com
윤정식기자00000@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