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최고 의결 기구인 전국위원회가 열린 7일 대방동 공군회관. 웃음과 반가움의 인사가 오갔던 회의장 분위기는 일순간에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핵심 쟁점이던 대표 경선 시 여론조사 반영 여부를 놓고 토론을 지켜보던 이해봉 의장이 갑자기 “현행대로 하자”며 의사봉을 두들긴 것이다. 이날 참석인원 430명 중 절반이 넘는 266명이 위임장을 통해 자신에게 표결까지 맏겼기 때문에 더 이상의 찬반 토론이나 별도의 투표는 필요없다는 ’해석’이 빛난 대목이다.
“짜고 치는거냐”, “완전 사기다”, “물러나라” 같은 고함과 삿대질, 그리고 멱살잡이까지 불러온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중립적인 입장의 당직자들 조차 “한나라당 역사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황당해할 정도였다. 한 당직자는 “반대쪽에서 법적 대응을 한다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라며 “쇄신은 고사하고 망신살이 뻗칠 일만 남았다”고 한탄했다.
지난7일 고성과 욕설, 멱살잡이가 오간 전국위원회가 끝난 뒤 회의장 한 쪽에 구겨진체 남겨진 한나라당의 플랜카드. 이 플랜카드에는 ‘쇄신, 소통, 국민’ 같은 문구들이 가득했다. |
만신살은 허술한 당헌, 당규도 한 몫 했다. 1997년에 창당해 올해로 14년 동안 원내 제 1당, 또는 집권 여당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정당이지만, 위임장의 효력과 유효 범위에 대한 규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모든 의결사항을 의장에게 위임한다’는 애매모호한 위임장의 문장 하나에 토론과 설득, 그리고 다수결 원칙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설 자리가 없었던 셈이다.
결국 스스로 쇄신과 변화를 외치며 수 차례 토론, 의총, 막판 조율 끝에 결실을 눈 앞에 뒀던 한나라당의 7월 경선 룰은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야 될 처지에 놓였다. 위임장을 제출했던 위원들 중 일부는 위임장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같은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8일 오전 부랴부랴 비대위원들을 불러모은 정의화 비대위원장은 도 “초등학교 선거도 안그런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최정호 기자@blankpress> choij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