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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황석영의 ’낯익은 세상’
“이전에 추구했던 세계, 현실에 밀착해서 쓰는 소설이 아니라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맥상통하게 흐르고 있는 훨씬 보편적인 걸 그리고 싶다.”

칠순을 앞둔 소설가 황석영(69) 씨가 만년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첫 전작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문학동네)을 냈다. 이번 작품은 ‘한씨연대기’ ‘장길산’ ‘무기의 그늘’ 등 리얼리즘 문학으로 일컬어지는 전반기 문학과 감옥 출소 후 써낸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에서 보여준 한국적 형식 실험이랄 후반기문학을 거쳐 만년문학을 여는 첫 작품이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작품의 주 무대는 쓰레기매립지로 재생할 만한 것들을 그러모아 생계를 유지하는, 세상에서 밀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80년대 중반께의 난지도가 소설적 배경이지만 소설 속의 이름은 난지도의 옛이름 꽃섬이다. 작가는 “꽃섬은 난지도를 추상화한 것이다. 상황을 빌려온 것뿐”이라며, “세상 어디에나 있는 쓰레기장이 갖고 있는 일상을 꾸려가는 욕망에 대한 반성을 다뤘다”고 했다.

주인공 14살 소년 딱부리는 엄마와 함께 세상 끝, 사람들이 쓰고 버리는 모든 물건들이 흉물스럽게 산처럼 쌓인 쓰레기촌으로 밀려나지만 악취와 빈곤에 매몰되진 않는다. 소년에겐 보통 동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일종의 모험의 대상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비밀공간인 ‘본부’와 정신이 때때로 온전치는 않지만 버려진 개들을 돌보는 빼빼네 엄마집, 과거 농사짓던 풍요로운 꽃섬에 살던 푸른 빛으로 떠도는 김서방네 정령들을 만나며 어른들의 세계와는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도깨비의 세계는 작가가 후반기문학에서 추구해온 ‘혼’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아껴쓰던 물건에는 정령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쉽게 만들고 버리는 걸 미덕으로 여기며 정령성을 상실했다. 사물과 인간은 그렇게 멀어진다. 도깨비의 세계가 다른 세상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래전부터 함께 해온 낯익음이며, 반면에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만들어낸 쓰레기, 소외야말로 오히려 낯섦이란 게 작가의 메시지이자 현실인식이다. 꽃섬은 그런 의미에서 두 세계가 공존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작가는 소년의 시점을 통해 두 세계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만년문학의 전략(?)이랄 동화적 환상에 비낀 리얼리즘으로 방향을 틀었다. 리얼리즘의 과학성을 덜어낸 후반기 문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작가 스스로 이번 작품을 통해 “그런 새로운 길이 보인다”고 만족해했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로 매너리즘과 작가로서의 본능적 위기감을 들었다. 해마다 장편 한 편씩 써내면서 2년여 전부터 너무 쉽게 쓰는 거 아닌가, 자기 변신을 하지 않으면 당분간 글을 쓰지 못하겠다는 초조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강남몽 표절’사건은 그에 따른 경고였던 셈이다.

작가는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이번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이 이뤄냈던 세상의 허구성, 구제역으로 350만마리의 생명을 묻어버린 것들이 불길하게 다가오고 그동안 소홀하게 한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작가는 앞으로의 만년문학 10년의 청사진도 내보였다.

일단 등단 50년을 맞는 내년에는 조선조 말 여러 풍랑을 겪는 주인공의 얘기인 자전적 작품론 격인 소설 ‘이야기꾼’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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