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전원의 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년에 볼 수 없었던 이상한 현상들이 발견된다. 산과 들에 핀 각종 꽃에는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꿀벌과 나비 대신 무익한 곤충들이 점령했다. 또 남쪽 지방에 비해 계절이 한참이나 더디게 오는 강원도에서 5월 중순인데 벌써 잠자리가 나타났다. ‘이상한’ 봄이다.
필자는 지난 4월 하순께 토종벌통 2개를 집 뒷산 자락 끝에 설치했다. 지난해 전염병(낭충봉아부패병)이 돌아 토종벌이 거의 궤멸됐음을 알기에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행여 뒷산에 살아남은 야생벌이라도 있을까 하는 마음에 설치했을 뿐이다.
그런데 5월 초순 어느 날, 벌통 옆 이팝나무 꽃들 사이로 벌들이 웽웽거리며 날아다니는 것 아닌가. 순간 “역시, 야생벌은 살아있구나”라며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게 웬걸, 꿀벌이 아니라 날갯짓 소리가 벌과 흡사한 처음 본 곤충 떼였다.
비슷한 시기 집 현관 데크 옆 들꽃에서 발견한 곤충도 파리도 아니고 꿀벌도 아닌, 벌처럼 위장한 채 살아가는 ‘등에’였다. 지금은 완연한 봄인데도 나비는 간간히 이 꽃 저 꽃 날아다니지만 토종벌의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북부지방인 강원도에서 5월 중순인데도 벌써 잠자리가 나타났다.
꿀벌은 지구상에 출현한 생물 가운데 가장 열정적이고 조직적인 생활을 하는 농사꾼이다.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꿀벌은 풀과 나무가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열매를 맺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과일나무 등의 곤충 매개에서 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의 저자 로완 제이콥슨은 꿀벌 없이는 농업이 존속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물리학자 알버트 아이슈타인도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간도 멸종할 것이다”고 말했다. 1960년대 미국 여성 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이란 저서를 통해 당시 DDT(고독성농약)의 남용으로 인해 대규모 환경생태계 파괴가 이어지고 그 결과 만물이 약동하는 봄이 아니라, 봄은 침묵하고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남겼다.
최근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은 긴급 보고서를 통해 꿀벌 감소 현상이 빨라질 경우 생태계 교란은 물론 식량 안보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5월초순 이팝나무 꽃에 벌 대신 몰려든 곤충의 모습. 날개짓 소리가 벌과 흡사하다.
생태계 파괴는 자연의 질서를 거스른 인간 스스로가 초래한 자업자득의 결과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대기 및 수질오염, 토양오염, 농약오염을 낳았다. 이를 복원하려면 결국 인간의 삶을 환경생태계와 어우러지도록 바꾸는 방법 밖에는 없다.
청정지역이라는 강원도 전원에서 맞은 ‘이상한’ 봄이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될까 자못 걱정스럽다.
(헤럴드경제 객원기자,전원&토지 칼럼리스트 cafe.naver.com/rm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