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의 R&D체제가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따라가기 바빴다면, 이제는 우리나라 과학기술로 세계를 리드해 나가겠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의 청사진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의 이 ‘한마디’에 담겨 있다. 말그대로 과학벨트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체질을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전환하기 위한 핵심사업인 것이다. 지난 16일 최종 입지로 대덕지구가 선정되면서 큰 그릇이 마련됐다.
그렇지만 지금 상태라면 지역 이기주의와 정치논리에 치여, 과학벨트가 자칫 좌초되거나 궤도수정될 우려가 높은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는 벨트 조성이 완료되는 2017년까지 무엇을 어떻게 담을 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많다.
▶본원, 캠퍼스, 연구단 중복 없는 콘텐츠 차별화가 열쇠= 과학벨트의 핵심 역할은 기초과학연구원이다. 이는 본원과 캠퍼스, 외부 연구단으로 구성된다. 본원에서는 순수 기초과학 연구와 중이온가속기 관련 연구를 위주로 담당하고 여기에 국내외 석학 30명 내외(해외학자 30% 이상)로 구성된 과학자문위원회가 자문 역할을 맡는다.
문제는 캠퍼스와 연구단의 역할이다. 과학벨트위는 KAIST연합(카이스트ㆍ대덕출연연), DUP(대구ㆍ울산ㆍ포항), GIST(광주) 등 3개의 캠퍼스를 지역별로 분산 배치, 이를 통해 지역별 특성화 기초연구 ‘거점’으로 육성키로 했다. 거점지구로 대덕지구를 선정하고 이곳에서 순수 기초과학을 중점 연구한다면서 캠퍼스를 통해 또 하나의 거점과 기초연구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각 조직별, 지역별 ‘중복’을 피할 수 있는 연구 콘텐츠 차별화가 핵심인 셈이다.
과학벨트위가 밝힌 연구주제를 보면 본원은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디스커버리형, 캠퍼스는 미래사회 파급이 큰 챌린지형 등으로 ’막연하게’ 나온 상태다. 두 주제를 가르는 기준이 시급히 세워져야 하는 이유다. 더욱이 외부 연구단도 챌린지형을 연구주제로 삼고 있어 캠퍼스 연구주제와 똑같이 겹쳐 있다.
▶기능지구 활성화 돼야 산학 시너지 나온다= 천안, 청원(오송, 오창), 연기(세종시) 등 3곳의 기능지구는 이 장관이 밝힌대로 3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우수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막중한 역할임에도 기능지구에 배정된 예산은 가장 적다. 총 5조2000억원 중 기능지구 지원 예산은 3000억원으로 전체의 5%대에 불과하다. 물론 연구에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을 쏟아 부어야 과학벨트 취지에 부합하지만, 이를 산업 측면에서 부흥시킬 기능지구 비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민주당 변재일 국회교육과학기술위원장(지역구 청원)은 “3000억원을 3곳에 분산한다면 각 기능지구 당 1000억원씩 돌아갈텐데, 이 정도로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없어 민간투자를 끌어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송생명과학단지ㆍ오창과학단지, 세종시, 천안간의 민간투자 유치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민간업체가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규제완화나 세제혜택도 마련되야 한다는 지적도 따르고 있다.
▶해외 고급 인력 어떻게 모셔올 것인가도 고민해야= 과학벨트위는 기초과학연구원 운영 방침으로 연구 테마가 아닌 과학자를 기반으로 삼는 ‘사람중심’ 체계를 확립한다고 밝혔다. 즉 특정 테마를 정해 놓고 여기에 과학자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우수 인재를 최대한 끌어온 뒤 이들이 주도적으로 테마를 잡아가는 방식이다.
따라서 향후 어떻게 인재풀을 운영할 것인가가 기초과학연구원 운영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실제 일본의 RIKEN이나 독일의 MPI 같은 연구소에는 30% 안팎이 해외 과학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을 어떻게 끌어오는가가 관건이다.
이밖에 연구단장이 독립적으로 인력구성과 연구비를 운용할 수 있도록 자율성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들을 적절하게 감시할 수 있는 역할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태일 기자@ndisbe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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