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발가락으로 붓을 쥔 채, 교실 바닥에 펴놓은 한지 위에 ‘푸른자전거’를 쓰고있는 뇌병변 1급 오성학(25)씨. 그를 바라보던 캘리그라퍼 강병인 씨가 말한다. “자전거가 굴러가는 느낌을 살려봐. ‘전’의 ‘ㄴ’ 을 둥글게 굴리니 바퀴 느낌이 나지? ‘ㅓ’를 더 길게 빼면 자전거 모양의 일부를 글씨에 담을 수 있고.” 강 씨가 자전거 느낌이 물씬 나는 손 글씨를 직접 선보이자 오성학 씨 입에서 환한 미소와 함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지난해 3월부터 약 13개월 간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진행된 ‘장애인을 위한 마포 캘리그라피 학교’의 수업 풍경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캘리그래퍼 강병인 씨(49)가 개인의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는 ‘프로보노’로 나서 6명의 장애인들을 자신의 제자로 키웠다.
역도선수이자 장애1급인 서경원 씨, 뇌병변 1급으로 구족(口足)글씨를 쓰는 오성학 씨, 지적장애 2급인 강양욱 씨, 뇌병변2급 정해룡 씨, 지체3급 김부기 씨, 뇌병변2급 박동순씨 등 6명의 장애인들이 바로 그 주인공.
‘홍대앞’에 연고를 둔 강병인 씨는 지난 2008년 관할구청인 마포구청에 자원봉사의 뜻을 밝혔고, 2010년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매주 목요일, 3시간 씩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마포캘리그라피학교를 운영하면서 6명의 장애인들에게 캘리그라피 이론과 실제, 포토샵 등을 무료로 가르쳐 왔다. 수강생으로 뽑힌 이들은 미술과 서예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2~30대 장애인들로 특히 생활이 어려운 이들을 우선 선발했다.
강병인 씨는 “제자들에게 단점은 곧 장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며 “장애를 극복하는 것보다는 즐기면서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또 “누구라고 밝히지는 않겠지만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한 학생도 있었다”며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열심히 따라와 준 수강생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손글씨 솜씨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 ‘희망’이 19일부터 오는 25일까지 마포구청 로비에서 열린다.
강병인 씨(앞줄 우측 두번째)와 그 제자들 [마포구청 제공] |
강병인 캘리그라피연구소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첫날인 19일 오후 4시, 전시회 개막행사로 시작될 예정이다. 테이프 커팅과 함께 박홍섭 마포구청장의 격려사, 강병인 씨 등의 인사말이 있은 후 수료증 전달식, 수료생 들의 손글씨 시연행사 등이 이어진다. 이튿날인 20일부터 마지막 날인 25일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를 앞두고 있는 장애2급 강양욱 씨(39)씨는 “아직 실력이 못 미쳐 부끄럽다”고 운을 뗀 뒤 “처음엔 글씨 쓸 때 구도가 맞지 않아 종이를 접어서 접은 선에 맞춰 썼지만 지금은 종이를 접지 않아도 된다. 또 예전엔 선생님한테 꾸중 듣는 횟수가 많았다면 지금은 칭찬도 종종 듣는다”며 웃었다.
강병인 씨와 마포구는 올 한해도 이들을 대상으로 캘리그라피 이론 및 실기교육을 지속한 후, 내년 경에는 관내 디자인 기업과 연계해 캘리그라피 사회적기업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강 씨는 “어떻게 보면 이분들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서 써낼 수 있는 능력 기반이 다져지지 않으면 한순간에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만큼 끝까지 애정을 가지고 돕겠다”고 말했다.
<김재현 기자 @madpen100> madp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