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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괜찮아요, 제 네 손가락만 기억한다해도”
온전히 음악만으로 평가받고 싶은 욕심?

그런 생각 한번도 안해봤어요

장애인 피아니스트로 연주 계속하면

장애인 복지에 대한 관심도 커질테니까요

늘 보호 받아야 할 대상으로, 혼자서는 어떤 일이건 완전하게 끝내기 어려울 것 같은 존재로 인식되는 장애우들. 그러나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로 10여년 전부터 유명세를 탄 이희아(27ㆍ여) 씨는 오히려 주위에 많은 조언을 하고 도움을 주는 데 익숙하다. 장애우 피아니스트로서 ‘이희아 역할론’과 예민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의견을 피력하며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했다.

지난달 27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정신 건강의 날’ 행사에서 공연을 앞둔 이 씨를 만났다. 그는 이제 수줍은 소녀티를 벗고 씩씩한 청년이 돼 있었다.

이 씨는 연주 일정 외에도 사단법인 경남통일농업협력회(경통협)의 홍보대사로 ‘통일딸기’ 홍보에도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통일딸기는 북한과 남한이 서로 모종을 주고 받으며 재배하는 딸기로 지난 1월에는 북한에서 키운 모종을 들여와 재배한 통일딸기를 경남 밀양에서 수확하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장애인의 날인 지난달 20일을 전후해 공연이나 출연을 요청한 곳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이 씨에게는 항상 신체적 불편함을 극복하고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장애인의 대표적인 롤 모델이라는 이미지가 오버랩되며 이와 관련한 행사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 이 씨는 혹시 이런 한정된 자신의 이미지에 서운한 감정은 없을까. 온전히 음악만으로 평가받고 싶은 욕심은 없을까. 이 같은 의문에 이 씨는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해봤다”며 딱 잘라 말한다.

“장애인들에 대한 복지가 미약하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장애인 콜택시라든지 많이 좋아진 부분이 있어요. 제가 장애인 피아니스트로서 연주를 계속함으로써 국민들, 특히 정치인들이 장애인 복지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해외에서도 한국 장애인들의 여건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고요. 저를 보고 장애인 피아니스트,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만을 떠올린다해도 큰 불만 없어요.”

이 씨가 자신의 운명을 바꾼 피아노를 만난 건 벌써 21년 전이다. 이 씨 스스로도 여섯 살 때 물리치료 겸 운동 삼아 시작한 피아노가 자신을 이렇게 유명하게 만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네 손가락을 통틀어 관절은 단 두 곳밖에 없어 음을 제대로 이어치기도 어려웠다. 각고의 노력끝에 유명세를 타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박자감이 부족해 생기는 어려움은 여전했다.

“휘성 같은 대중 가수들과 함께 작업할 기회가 많으니 자연히 박자가 중요해지더라고요. 지금도 틈틈이 교수님들께 조언을 듣고 레슨을 받고 있어요.”

이 씨는 스스로의 바람대로 장애우들의 모습을 알리는 현실참여형 음악가로 자리를 굳히면서 후배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선천적 시각장애를 안고 있지만 절대음감을 자랑하는 피아노 새싹 예은 양과 팔꿈치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혜연 양 등을 방송을 통해 만나 멘토를 약속했다. 박세리 선수가 미국 무대를 정복하는 것을 보고 자란 ‘박세리 키즈’들이 현재 우수한 성적으로 LPGA를 주름잡듯 이 씨가 개척한 길에서 희망을 본 장애우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씨는 자신의 뒤를 이으려는 장애우 연주자들에게 “자신만의 음악성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 친다는 것이 신기한 광경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조용필 씨가 노래 한 곡을 소화하기 위해 1000번씩 듣는다는 일화처럼 자기 계발을 계속해서 자신한테 주어진 음악 세계를 펼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해요. 쇼팽을 연습한다면 쇼팽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연구도 많이 하고, 쇼팽의 감성과 자신의 감성을 같이 부여해 결국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찾아야 합니다.”



피아노 연주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자신있게 연주할 것”을 주문하는 이 씨는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랑랑을 꼽았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파격의 아이콘’으로까지 불리는 랑랑의 열정이 좋다.

“베토벤 소나타 ‘열정’을 연습하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2005년 미국에서 한 동양인 남자 연주자(랑랑)가 ‘열정’을 치는 모습을 봤는데 너무 연주가 훌륭해 순식간에 팬이 됐어요. 랑랑의 연주를 보고, 저도 다시 ‘열정’에 도전하고 있어요. 랑랑이 한국에 오면 꼭 만나보고 싶어요.”

랑랑과의 협연을 꿈꾸는 피아니스트, 통일딸기를 통한 통일 전도사, 장애우 인권 지킴이 등 하루 하루를 새로운 꿈으로 수놓는 이 씨가 전하는 선율이 어떤 미래를 그려낼지 이 씨의 향후 행보에 기대감이 모아진다.

“통일·장애인 복지 등

사회적인 이슈

전세계에 알리고파

요즘엔 영어 삼매경”

선천성 사지기형 1급의 장애를 안고 태어난 여섯 살 소녀가 피아노를 만난 데에는 서울에서 전라도까지 스승을 찾아 전국을 헤맨 어머니의 노력이 있었다.

종이 한 장 집을 힘도 부족했던 이희아 씨에게 손가락 힘을 길러주기 위해 어머니는 피아노 연습을 고안해냈다. 물리치료 차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기로 했지만 가르쳐줄 선생님을 구하는 일이 첫번째 난관이었다. 장애를 지닌 소녀에게 피아노를 가르쳐달라는 부탁에 대부분의 피아노 강사들은 “미술이나 컴퓨터를 해야지 왜 그 손으로 피아노를 배우려 하느냐”며 불가능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숲속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던 조미경 선생님은 어렵게 꺼낸 이 씨의 부탁에 “불가능한 것이 어디있겠느냐. 한번 해보자”며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호랑이 선생님’과의 교습이 시작됐다.

그러나 관절에 힘이 없는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쳐야 하는 데에서 두번째 난관이 찾아왔다. 피아노 치는 관절이 엄지손가락 쪽에만 있는 데다가 워낙 힘이 없다보니 좀처럼 음이 이어지지 않았다. 열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더라도 페달이 없으면 음이 뚝뚝 끊어지는데 하물며 네 손가락에 페달을 다룰 엄두조차 낼 수 없으니 매끄러운 선율이 마음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노력한 만큼 되니까 좋다”며 웃는 이 씨지만 당시의 마음고생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각종 피아노 콩쿠르를 휩쓸며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린 이 씨는 청와대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초청 공연을 열며 유명인으로 거듭났다. 공연이 없을 때에는 시간을 정해놓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늘 연습을 한다는 이 씨는 최근 영어 방송 등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데에 열의를 쏟고 있다. 영어가 짧다보니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해 늘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통일과 장애인 복지 등 사회적인 이슈에 목소리를 낼 여력이 있다는 게 기쁘다는 이 씨는 활발한 활동 때문인지 아직 남자친구는 만나지 못했다. 이 씨는 이상형으로 ‘함께 음악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는 남성’을 꼽으면서도 “아직은 연주와 사회 활동을 하면서 지내는 게 더 좋다”며 밝게 웃었다.

<도현정 기자@boounglove> kate01@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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