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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절함이 느껴지는 '김숨'의 소설
일상의 균형을 지키려는 사람들

 <철>과  <물>로 만난 김숨은 무척 기묘했다. 때문에 광물을 다루지 않은 소설은 어떨까 궁금했다. <간과 쓸개>(문학과지성사, 2011) 속 인물은 대체적으로 어떤 경우에도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았고 사소한 분쟁을 원하지 않았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렇다고 욕구가 없는 건 아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사건 사고 없이 살고 싶을 뿐이다. 그들은 때로 우리 주변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웃들이었다. 해서, 더 마음이 머무른다.


표제작 <간과 쓸개>는 간암에 걸린 주인공과 담낭관에 담석이 생긴 큰 누님의 이야기다. 땅 3백 평을 팔아 자식들에게 나줘 주고 혼자 사는 그는 간암 투병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안고 산다. 간암과 쓸개즙이 나오지 못해 생긴 병을 비교할 때 위급함은 간암이 훨씬 크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는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간암 환자로 살아가는 그나 아흔이 넘은 나이에 배에 구멍을 뚫어 쓸개즙을 빼내는 일은 죽음 가까이에 있었다. 그에게도 큰 누님에게도 장성한 여러 자식이 있지만, 암과 싸우며 일상을 견뎌내는 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북쪽 방>은 32년 동안 중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치다 정년퇴직을 맞은 노인 곽노의 일상이다. 폐가 좋지 않아 먹어야 할 약이 4봉지나 되는 그는 북쪽방에 갇힌 듯 생활한다. 그에게 주어진 공간이자 삶은 북쪽 방 뿐인 것이다. 아내는 그에게 부속된 모든 것(밥, 속옷, 화장실까지)을 북쪽 방에 넣고 언제나 문을 닫는다. 그 안에서 그는 지하실 가방 공장 미싱 소리에 누군가 벽에 쇠공을 던지는 소리와 함께 산다. 종교 활동에 빠진 아내는 점차 곽노를 잊어버린다. 곽노가 때로 죽음을 경험하는 북쪽 방은 곽노이며 거대한 광물인지도 모른다.


‘광물은 외계를 내계로 끌어들인다. 외계를 압축해 내계에 기록한다. 기록은 색, 조흔색, 광택, 굳기, 비중, 쪼개짐, 단구, 점성, 자성, 발광성 등 여러 방식으로 구현된다. 만물이 그러하겠지만, 광물의 형성에도 분명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곽노는 북쪽 방이 벽면들로 막혀 있지만, 외계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될 수 없음을 안다. 북쪽 방은, 북쪽 방을 둘러싸고 있는 외계의 온도와 습도, 소리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고스란히 곽노의 육신에 영향을 미친다.’ p.142~143


<육(肉)의 시간>은 부부 사이에 등장하는 한 여자로 인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소설이다. 그러나 작가는 아주 태연하게 일상을 유지하는 아내를 통해 독자의 호기심을 무시해버린다. 아내는 셋이서 평화롭게 살수 있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남편이 데려온 여자는 누구이며, 그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한 건 당연하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과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설령, 그 여자가 죽은 육체라도 말이다. 묘한 소설이다.


<흑문조>는 빚으로 마련한 집의 보일러 기계가 고장나 벌어지는 일이다. 보일러 배관공은 집안 여기 저기 구멍을 파놓고 원인을 찾지 못한다. 원하던 바가 아니다. 단순히 보일러를 고치려 했을 뿐인데,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만다. 특별한 일 없이 돌아가던 권태롭기까지 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배관공이 파놓은 구멍들 때문에 집 안에서의 내 동선은 엉망이 되었다. 집의 질서가 흐트러졌다. 고스란히 드러난 보일러 배관들을 바라보는 것도 곤혹스러웠다. 보이러 배관마다 녹 뭉치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p. 171


오랜 기간 고시를 준비하다 실패해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 <모일, 저녁> 속 삼촌이나 평생을 직사각형 매표소에서 보낸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살아온 대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다. 일상의 균형이 깨지기를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작은 틈새, 균열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없고 할 수 있는 건 울어버리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철>과 <물>을 빠르게 읽었다면 <간과 쓸개>는 느리게 읽으면 좋겠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며 소설 속 인물처럼 웅크리고 있거나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가만히 울음을 토해내도 괜찮겠다. 북받치는 감정을 눌러 담아 만들어 낸 소리들, 주의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김숨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그러하지 않을까.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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