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씨가 자전적 에세이 ‘4001’을 통해 털어놓은 지난 이야기에는 그 때의 충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 안에는 지난 2007년 1·2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2009년 4월 보석으로 풀려나기까지 신정아 씨의 수감생활과 문화일보와의 누드 파문, 큐레이터로서의 활동 시절,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의 이야기가 상세하게 적혀있다.
책 곳곳에 드러나는 ’익숙한 이름들’에는 인연도 있고 악연도 있었다. 세칭 ‘신정아 게이트’로까지 불리게 됐던 수많은 인사들이 차례로 거론돼있다.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의 관계는 첫 만남부터 사건 이후까지의 일들이 얄궂게도 상세히 서술돼있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이미 부인했던 일이 거론돼 후폭풍을 맞고 있다. 모 신문사의 C 기자에 대한 폭로도 있었다. 이들의 만남을 악연이었다.
뜻깊은 인연도 눈에 띄었다. 큐레이터 시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만남과 자신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들은 좋은 인연이었다.
▶ 신정아의 악연들...“정운찬 전 총리가 호텔로 불러내...” = 정운찬 전 총리는 일축했지만 신정아 씨는 기어이 한 번 더 언급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지난 2007년 당시 “신정아 씨에게 서울대 교수직을 제안했다”는 보도에 대해 “서울대의 채용 시스템을 아는 사람이면 신씨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러한 강력 부인에도 불구, 신정아 씨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정 전총리와의 관계설을 다시 꺼내놓았다.당연히 그 배경에도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정아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정 전 총리가 자신에게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고 말하며 “앞으로 자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면서 “정 전 총리가 서울대 교수직과 미술관장직을 제안하기도 했다”며 “밤 10시 이후에 만나자는 소리를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신씨는 정 전 총리가 서울 팔레스호텔 바(Bar)로 자신을 자주 불러 냈고, 그 자리에서 슬쩍슬쩍 본인의 어깨를 치거나 팔을 건드렸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신씨는 정 전 총리와의 자리가 불편해 먼저 일어서려고 하면, 정 전 총리가 핸드백을 두고 가라든지 핸드백을 끌어 당기며 못 가게 할 때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 신정아의 악연들...“택시 타자마자 단추 풀러야”...C 기자, “황당하다”=유력일간지 전 기자 C씨와의 이야기는 더 적나라했다.
C기자에 대한 묘사는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택시에 동승해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이야기로 전해진다.
“C 기자는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달려들어 나를 껴안으면서 운전기사가 있건 없건 윗옷 단추를 풀려고 난리를 피웠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그날 내가 입은 재킷은 감색 정장으로 단추가 다섯 개나 달려 있었고 안에 입은 와이셔츠도 단추가 목 위까지 잠겨 있어 풀기가 아주 어려운 복장이었다. (…) C 기자는 그 와중에도 왜 그렇게 답답하게 단추를 꼭꼭 잠그고 있느냐는 소리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거론된 C기자는 현재는 국회의원이다. 그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지금 책을 보고 있는데 악의적인 거짓말이고 신정아 출판사 관련 언론 들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2007년에도 국회에서 정청래 의원이 이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법률 검토를 했다. 이게 특정인을 암시할 경우 악의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대로 법적 대응하겠다. 나 인지 유추하게 하면 다 걸린다. 언론 같은 경우 책같은 경우 명예 훼손이 다 다르다. 워낙 황당해서 어떤 의도로 썼는지 모르겠다. 자기 상상력으로 쓴 것 같다”고 전했다.
▶ 신정아의 인연...“김우중, 도피생활 중 만난 첫 손님”= 악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정아 씨는 지난 2000년 ‘대우사태’당시 도피 중이던 김우중 전 회장과 프랑스에서 맺은 인연도 공개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신 씨의 금호미술관 재직 당시였다. 이 때 기획한 전시회를 위해 프랑스로 건너가던 중 비행기 안에서 김 전 회장과 조우했던 것.
책에 따르면 신씨는 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의 작품대여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000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니스로 향했다.
비행기 안에서 낯익은 동양 신사를 만났고 그가 김 전 회장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옆자리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인연을 쌓았던 것.
두시간 반 정도의 비행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김 전 회장의 거시적 안목과 비즈니스 사고, 배짱 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신 씨는 밝히고 있다.
아울러 김 전 회장이 자신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덧붙였다.
다음날 저녁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김 전 회장이 전화를 걸어와 집으로 저녁 식사 초대를 했다는 그는 김 전 회장은 친구 집이라고 말했지만 신씨는 그곳이 김 전 회장의 집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신씨는 그 사실을 예전 대우에서 구입한 한국 작가의 작품과 서울에서 가져온 가구들을 보고 알았다며,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과 저녁식사를 “돌아가신 아빠와 먹을 때처럼 편안했다”는 신씨는 늦은 시각 호텔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못내 아쉬운지 다음날 저녁에는 니스에서 가까운 모나코에서 식사를 한 번 더 하자고 제안했고 신씨를 호텔로 바래다 준 김 전 회장의 베트남 비서 ‘손’이란 사람은 신씨가 ‘보스’를 다녀간 첫 손님이라고 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두 사람의 인연이었다.
▶ 신정아의 인연...“노 대통령, 관심은 쏟아주셨지만...”= 22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신정아 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조차 죄송스럽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노 전 대통령은 신정아에게 있어 자신의 재능을 알아준 사람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신 씨는 두 사람의 대화를 인용했다. 신정아는 당시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노 전 대통령은 “어린 친구가 묘하게 사람을 끄는 데가 있다. 말씀을 참 잘하시네”라면서 더 큰 일을 위해 세상에 나서보지 않겠냐고 권했다고 적고 있다.
이후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 할 때마다 자신의 의견을 물었고, 말하는 것이 또박또박하다며 대변인을 해 봐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일화는 더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미국 드라마를 ‘웨스트윙’을 권했다는 것. 신정아는 노 전 대통령이 이 드라마를 권한 것에 대해 “단순히 권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렇게나마 알아두라고 하신 것 같다”면서 “관심을 쏟아 주셨지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없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는 2007년 학력위조 파문으로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를 적어가며 ‘대통령의 한 마디’라는 제목으로 한 번 더 당시를 회상했다.
노 전 대통령이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는 상황에서 전한 이야기였다. 두 사람의 스토리를 들은 노 전 대통령은 “소설같다”는 말로 언론의 가십성 기사에 대한 코멘트를 전했고, 당시 신정아는 “속이 확 뚫리도록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괜한 불똥이 튀면 어쩌나 염려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대서특필되고 귀국을 서두르려 했을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한사코 신정아 씨의 귀국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미 추락할 만큼 추락해 바닥까지 온 상황에 굳이 귀국해 다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신씨는 “변 정책실장이 이 상황을 책임지는 것이 낫다”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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