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과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일본 동북부에 사망자와 실종자 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참사 5일째를 맞은 일본은 자고나면 발견되면 무더기 시신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설상가상으로 원자력발전기의 추가 폭발이 나타나면서 방사능 공포도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자고나면 시신 무더기…여진공포 여전=쓰나미로 초토화된 미야기현, 후쿠시마 현의 마을은 밤이되자 칠흑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전기도 물도 덮고 잘 이불도 부족한 상황에서 피난민들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서로 나눠가며 밤을 지새웠다.
지진과 쓰나미는 아름다웠던 해변 마을을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다. 미야기현 사이토마을은 쓰러진 건물과 조각난 도로, 집 밖으로 쏟아져 나온 세간도구까지 합쳐져 거대한 잔해더미로 변했다. 4일 낮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생존자 발견은 포기한 채 시신 발굴작업에 나섰다. 공중에는 방수포로 싼 냉동시신 1백여구를 매단 수송헬기가 선회했다. 시신 더미 사이로 주먹을 꽉 쥔 남성의 팔이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소리없이 말해줬다.
14일 미야기현 해안 두 곳에서는 2000구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사망자와 실종자수는 15일 오전 8시 현재 5900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와테 현 리쿠젠타카타에서 1만7000명이 행방불명된 것을 비롯해 실종자가 1만명이 넘는 지역이 세곳에 달해 피해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이미 뻘밭이 돼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행불자 공포’는 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ㆍ연료 태부족…수도권 사재기 우려도=재해지역에 전력과 물은 물론 생필품 부족 사태는 계속됐다. 지진과 쓰나미로 초토화된 지역들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도쿄전력은 14일 오후부터 수도권 윤번정전(지역별 순환정전)을 실시했다.
토치기현에 살고 있는 니시 타케시씨는 14일 밤 “촛불을 켜고 밥을 먹었다”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재해지역에서 난방시설도 없이 지낼 이재민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침 출근시간 윤번정전은 15일 처음 실시됐다. 도쿄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사이타마시 등 3그룹이 포함됐다. 정전으로 철도회사의 열차 운행을 중단하거나 배차횟수가 축소돼 직장인들은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해 출근하는 모습이라고 현지언론은 전했다.
한편, 수도권내 사재기가 심화돼 재해지역 보급에 차질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아사히신문은 “물이나 기름 등 수도권내 소비가 필요이상으로 증가해 재해지역까지 미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14일 각 부처간 물가대책회의를 열고 “사재기로 인한 물가인상 현상을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시민들에 냉정을 찾아줄 것”을 당부했다.
실제로 13~14일에 걸쳐 대형 유통사의 수도권 발주량은 물이 평소보다 10배, 낫토가 23배, 우유가 1.5배 올랐다. 식료품 이외에도 가스난로의 매출액은 6배, 자전거 3배, 마스크는 2.5배 상승했다.
물가대책을 담당하는 렌호 소비자 담당상은 재해지역 이외의 소비자들에게 “생활 물자는 안정적인 공급수량을 확보하고 있다”며 “사재기로 인해 재해지역에 물자가 공급되지 않을 가능성 있으니 필요한 양 만큼만 구입해달라”고 거듭 촉구햇다..
▶시민들 “절전ㆍ구호돕자” 메일 폭주…혼선 야기도=대지진의 참사에도 일본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빛을 발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인들이 사이에서 돌고있는 선의의 문자가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5일 보도했다.
시민들의 “절전ㆍ구호를 돕자”는 체인메일(한꺼번에 불특정 다수에 보내는 메일)이 폭주하면서 통신망 장애를 초래한 것. 이같은 메일은 또 부정확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시민들 사이에서도 혼란을 야기시켰다. 자위대가 구호물자를 받는다는 유언비어가 나돌면서 확인을 위한 문의가 쇄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총무성은 “이재민을 도우려는 선의의 의도는 알겠지만 통신망 혼란을 초래해 경찰이나 소방대의 인명구조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