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도 그는 루이비통의 인천공항 입점 등을 확정짓기 위해 4, 11월 두차례 한국을 찾았다. 그런 그가 1박2일의 숨가쁜 일정에도 반드시 찾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갤러리다. 아르노 회장은 신동빈 롯데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과의 면담 중간중간에 갤러리 방문일정을 집어넣었다. 더구나 갤러리에는 30분 먼저 도착해 30분 늦게 떠날 정도로 ‘새로운 작품과의 조우’를 한껏 즐겼다.
다양한 문화권의 혁신적 예술에서 ‘동시대 감성’을 느끼며 비즈니스의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물론 소문난 컬렉터답게 작품도 즐겨 산다. 서도호, 이불, 김혜련 등 한국의 재능있는 미술가의 이름을 줄줄 꿸만큼 한국현대미술에도 제법 이골이 났다.
최근들어 미술의 중요성을 더욱 인식한 아르노회장은 2013년에는 파리 볼로뉴숲에 ‘루이비통 창조재단 미술관’을 오픈한다. 그동안 수집해온 막강컬렉션, 즉 바스키아, 제프 쿤스 등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게다가 세계적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미술관을 아름답게 디자인해 ‘파리의 문화명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비즈니스와 아트’를 거의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 글로벌 기업인은 한둘이 아니다. 아르노와 라이벌인 PPR그룹의 프랑소와즈 피노(74)회장은 한술 더 뜬다. 구찌, 발렌시아가, 입센로랑 등을 휘하에 두고 있으며, 미술품경매사 크리스티까지 운영 중인 피노 회장은 아트 비즈니스에 가히 열정적이다. 수시로 ‘미술에 완전히 매혹당했다’고 되뇔 정도다. ‘미술계 수퍼파워’인 그는 중국, 일본에 이어 한국 작가(이우환 등) 작품도 수집 중이다.
그 뿐인가. 세계적 광고전문가이자 컬렉터인 영국의 찰스 사치는 스스로를 ‘아트홀릭’이라고 칭하며 ‘현대미술 순례’에 영일이 없다. 피노와 사치에게 있어 미술품은 ‘예술적 가치’ 이상의 신자본(new capital)’이기도 하다.
물론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이익을 따진다면 아트와의 협업에 선뜻 나서긴 힘들다. 그러나 기술력이 거의 평준화되는 이 무한경쟁시대에, 앞으로 유망한 것은 ‘창조산업’이다. 영국의 경우 전체 GDP 중 무려 29%가 정부의 DCMS(한국으로 치면 문화체육관광부), 즉 예술과 미디어,스포츠 분야에서 나올 정도다. 바야흐로 이제 ‘아트 앤 비즈니스(Art & Business)’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니 기업과 문화예술은 이제 한 배를 탄 처지가 됐다. 예술은 더 이상 기업의 이름을 근사하게 포장해주는 액서서리가 아닌 것이다. 아트마케팅을 위한 수단도 넘어섰다. 이제는 미래 생존을 위한 필수덕목이다. 지속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해선 아트와 함께 가지 않고선 곤란한 시대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세계 최초의 루이뷔통 공항 면세점 확보’에 만족해선 안된다. 우리도 무형의 것, 더 부가가치가 높은 ‘새롭고 독자적인 창조산업’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