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사에 따르면, ‘10~20대의 한국사 지식이 낮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대학생들이 88.6%나 됐다. 그 이유의 큰 몫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학습방법’이란 사실은 공감할 만하다. 한국사가 고교 필수과목으로 부활하면서 서술과 관점, 편집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는 한국사 책들이 나오고 있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지 관심사다.
무엇보다 역사문제연구소가 학계 각 분야의 권위자 17명과 함께 3년간 작업해 내놓은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웅진지식하우스)는 눈에 잘 들어오는 비주얼 편집과 편한 서술이 누구나 쉽게 다가가게 한다.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5권으로 구성된 시리즈는 균형감이 있다. 흔히 왕조사나 민중의 삶 등 한쪽으로 치우쳐온 데서 벗어나 어느 쪽도 배제하지 않고 고루 담아내되 일정한 관점을 유지한 게 돋보인다. 또한 주변국이나 세계사의 흐름과 겹쳐 읽기가 힘들었던 문제도 주변국과의 상호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정확한 이해에 도움을 준다. 가령 일본 도야마 현에서 일어난 쌀 소동과 조선내 쌀 증산계획, 임진왜란의 발발을 도요토미 히데요시 개인의 야욕이 아닌 16세기 동아시아 무역체제의 변화 속에서 파악하도록 제시한다.
특히 건강한 관점은 이 책의 미덕이라 할 만하다. 가령 1권의 ‘말갈족에 대한 재인식’에서는 발해의 지배층으로 고구려계만을 상정하는 혈연중심적 민족주의를 비판한다.
또 ‘안중근 대 이토 히로부미:동양의 평화를 둘러싼 두 초상’이야기도 영웅, 신화화를 벗겨내고 사실에 근거해 두 인물을 조명한다. 원래 안중근은 러ㆍ일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바랐을 정도로 일본의 ‘동양평화론’에 깊이 빠져 있었지만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걸 보고 이토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토 암살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에서는 이토를 기리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는가하면 스스로 합병청원서를 내는 일도 있었음을 기술하며 안중근과 이토는 이분구도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잡다단한 이면이 있음을 보여준다.
전국역사교사 모임의 주요 필자들이 저술한 ‘한국이 보이는 세계사’(창비)는 우리 근현대사와 세계사를 통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쓴 20세기 근현대사다. 그간의 강대국 중심의 세계사 서술에서 벗어나 약소국들의 역사를 두루 다루며 세계사의 평등한 주체로 같은 무게로 조명한게 새롭다. 가령 오스만 제국의 존망, 20세기 혁명의 첫 장을 연 멕시코 혁명,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민족운동, 아랍민족주의 등 변방의 역사가 나란히 등장한다. 강대국 중심의 세계사 속에서 약소국들의 다른 시도, 다른 가능성들을 가감없이 보여준 시도는 다른 역사서와 다른 점이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