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의 유별난 초콜릿 사랑은 루이 13세와 결혼한 에스파냐 국왕의 손녀 안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의 혼수품 중에는 초콜릿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는 초콜릿이 당시 최음제로 알려진 탓이 크다. 프랑스 궁정, 그 중에서도 여성들에게 인기를 끈 초콜릿이 사교계의 강장음료로 부상한 시기가 사회구조와 인권 그리고 천부적 정의를 내세운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혁명적 활동이 시작한 때와 같이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초콜릿음료, 초콜릿은 3000년 전부터 줄곧 노예들의 가혹한 희생을 바탕으로 한 전적으로 지배계급의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기자로 유명한 캐나다 저널리스트 캐럴 오프가 쓴 ‘나쁜 초콜릿’(알마)은 초콜릿의 역사이자 초콜릿을 통해 본 인류의 문화사이다.
카카오 음료를 처음 마신 3000년 전 중앙아메리카의 올메크족부터 콜럼버스와 아스텍 문명을 거쳐 유럽으로, 전 세계로 널리 퍼진 오랜 유혹과 피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인류에게 거역할 수 없는 혀의 즐거움과 달콤한 환상을 즉각적으로 선사해온 초콜릿이 오랜 역사속에서 언제나 희생과 피를 수반했다는 사실이 저자의 탐사여정의 맥이다.
캐럴 오프는 초콜릿의 이동경로를 따라 과거 무슨 일이 있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지 생생하게 재현해 보여준다. 마치 몰래 카메라가 따라가듯 커피산업의 더러운 이면이 그대로 노출된다.
초기의 초콜릿 기업가들은 공동체를 만들고 온정적 자본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 가운데 허시마을은 제과공장의 울타리 안에 놀이공원과 수영장, 대리석 로비의 대극장을 겸한 마을회관, 야외음악당, 골프 코스, 베르사유 공원을 본뜬 정원, 노면전차까지 있었다. 건강보험과 퇴직연금 혜택도 주어졌지만 노동자들은 파업에 나섰다. 허시는 마을을 사실상 자신의 영지처럼 운영한 것이다.
특히 앵글은 현재 세계 카카오 원두의 절반가량을 생산하는 코트디부아르의 참혹한 현실을 집중적으로 비춘다. 비옥한 카카오 생산지를 최대한 많이 장악하기 위한 반란군과 정부군의 싸움에 농민들은 생계유지도 어려울 정도다. 아무리 부지런히 일하고 좋은 카카오를 생산해도 남는 게 없다. 더 저렴하게 생산하기 위해선 어린이노예라는 사회악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노예아이들은 신체학대를 받으며 죽음으로 내몰리기까지 한다. 농민들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무거운 세금, 카카오가격이 높을수록 더 깊은 빈곤에 빠져드는 실상은 출구가 없어 보일 정도다.
코트디부아르 시니코송의 아이들은 초콜릿이 뭔지 모른다. 그저 카카오 열매를 딸 뿐이다. 그걸로 뭘 만드는지, 달콤한지 어쩐지 알 턱이 없다.
이쯤 되면 초콜릿은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선다. 선과 악 혹은 윤리적, 정의라는 말들과 더 가까워 보인다.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특성 등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특히 다큐멘터리 기자답게 현장성이 돋보인 책은 초콜릿의 미시사를 떠나 사물을 보는 또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