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이나 죽음, 퇴직이나 사업의 실패 등 앞이 보이지 않는 좁고 캄캄한 터널을 지난다고 느낄 때 절벽 끝으로 내모는 것은 실은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상실감이다. 혈연관계도 떨어져 있으면 남보다 못한 시대지만 어려운 때 팔을 조금만 내밀면 잡아줄 손이 있다는 걸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삶은 좀 편안해진다.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은 날로 좁아지는 가족관계를 포함해 친구와 이웃 등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근원적 관계를 돌아보는 때이기도 하다. 금주 신간으로 나온 ‘아빠가 선물한 여섯 아빠’(21세기북스), ‘꾸뻬 씨의 우정여행’(열림원), ‘수호천사’(이레)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와 용기, 따스함으로 메마른 마음자리를 채워준다.
‘아빠가 선물한 여섯 아빠’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PBS 다큐멘터리 시리즈물 ‘성경 속 명소를 걷다’의 진행자이기도 한 여행가 브루스 파일러의 실화다. 파일러는 여행이 삶의 즐거움이자 목표였던 남자다. 걷기는 그의 삶이었다. 그런 그가 대퇴부암에 걸렸다. 그에게는 그와 취미가 비슷하고 개발도상국의 기업을 돕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아내 린다와 어린 두 딸이 있다. 그는 무엇보다 어린 딸들이 아빠 없이 자랄 시간들이 마음에 걸린다. 그는 아빠 역할을 해줄 자신의 특성의 일부를 가진 지인 여섯 명에게 편지를 쓴다. “당신이 제 아이들의 아빠가 되어주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질문에 답해주고 이따금 점심을 사주고 축구경기에 데려가 주고, 새 신발을 사주고, 가족모임에 초대해주는 그런 평범한 아빠 역할이다. 책은 그런 자신의 일부를 구현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만나 추억을 나누는 이야기와 암과 싸우며 가족들이 혼돈과 고통의 한가운데를 어떻게 통과해가는지 담은 편지글 등 두 축으로 전개된다.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아빠위원회를 만든 아빠로서의 사랑, 자상함만이 아니다. 그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자랑삼는 것도 아니다.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가족이 온갖 심리문제의 전시장처럼 변해버린 혼란스러워진 상황을 신뢰와 사랑으로 가까스로 견뎌내며 그가 건져 올린 통찰은 말에 있다. 그는 말을 함으로써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신뢰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심지어 그 대상이 세살배기 아이라도 말이다. 그럼으로써 삶은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파리의 정신과전문의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 씨의 우정여행’은 언제부턴가 너무 바빠서 친구들을 만날 수 없게 된 현대인들에게 친구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되새겨준다. 자신의 분신인 정신과 의사 꾸뻬를 통해 임상경험에 바탕한 글쓰기를 해온 를로르는 이번 신간에선 위험에 처한 친구를 구하러 나선 꾸뻬의 여행을 통해 우정이 만들어내는 기적적 경험을 들려준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메신저 등 디지털 시대의 일회적 인간관계가 놓치고 있는 관계의 진실성과 오랜 친구의 본질에 대한 얘기는 마치 모험을 떠나듯 우리를 들뜨게 한다.
어느날 친구의 향방을 찾는 경찰관의 방문을 받고 꾸뻬의 조용한 행복은 흔들린다. 매력적인 아내와 아들이 있는 집으로 매일 저녁 어김없이 돌아가면서 그는 행복감을 느껴왔다. 그러나 그게 다인가. 꾸뻬는 자신이 참 많이 변했음을 깨닫는다. 몇 년 전의 꾸뻬였다면 친구를 찾아 먼 길을 떠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란 데 미친다. 아내와 의논끝에 그는 친구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감행한다.
‘친구를 만나서 얻는 즐거움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걸까?’ ‘타인과 친구의 차이는?’ ‘오래된 친구는 원시림의 나무처럼 귀하게 여겨야 한다’ ‘오래된 친구는 우리 인생의 뜨개질 속의 털실 한 줄이다’ 등 우정에 대한 의문과 깨달음이 흥미진진한 모험을 통해 무겁지 않게 전달된다.
그렇다면 왜 우정인가. 저자의 결론은 자신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고, 역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이다.
‘수호천사’는 지적 장애로 학교와 친구들 사이에서 외톨이로, 심지어 가족들로부터도 무시당했지만 좀 특별한 능력을 지녔던 로나 번의 자전적 얘기다. 로나는 언제나 주위를 맴돌고 있는 천사와 영혼들을 보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이런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오다 중년에 들어 얘기를 책으로 펴냈다. 독서장애 판정을 받아 잘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그는 컴퓨터상에 목소리를 녹음해 이를 장기간 글자로 풀어쓰는 과정을 통해 책을 펴냈다. 로나는 우리 각자에게는 수호천사가 있지만 다만 우리가 그들의 도움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라고 말한다. 책은 그녀의 삶과 천사들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가 혼자 해결할 수밖에 없는 일들에 있어서 그녀가 어떻게 천사들의 도움을 받았는가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신비주의적이고 환상적인 얘기들이지만 그녀의 메시지는 위로의 힘이 있다. “때로 상황이 비극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외면상 불행해 보이는 행복일 수 있다.” “죽어야만 천사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면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절망적이거나 커다란 고통에 빠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우리는 매일, 매달, 혹은 1년에 한 번이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수호천사와 대화를 나누는 로나 번의 삶은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근원적 관계를 통해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